일러두기 01. 1894년 7월 말 벌어진 성환 전투를 다루었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만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It is an unfortunate fact that we can secure peace only by preparing for war.
- 존 F. 케네디-
한성은 점령당했고 조선의 왕은 사로잡혔다. 일본은 자주국이 되라는 말로 조선의 개혁을 종용했다. 청에서 벗어나 일본의 아래로 들어오라는 뜻을 행동으로 보였으나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청은 일본의 의도를 눈치챘다. 하지만 그에 맞서 칼을 빼지도 넣지도 못했다. 청이 머뭇거리는 사이 일본은 칼을 빼들었다. 그 칼로 조선의 왕을 잡았고 청의 전함과 수송선을 베었다. 불편한 소식들이 자금성으로 날아들었다.
일본국이 조선의 궁을 침범했습니다.
아산 앞바다에서 교전이 있었습니다.
고승호가 격침당했고 수많은 병사가 죽었습니다.
감히. 어디를 감히. 누구를 감히. 소국이 대국을 감히. 결국 청도 칼을 빼들어야 했지만 칼끝은 무뎠다. 청은 전쟁을 피하려 했지만 막지는 못했다.
자금성에 들어간 소식은 성환에 주둔하고 있던 청군에게도 들어갔다. 무엇보다 지원군이 바다에서 패퇴한 소식은 적군보다 한 발 앞서서 청의 군사를 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었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제야 자신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전쟁의 한가운데였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등 뒤에서 자신들을 겨누는 일본의 칼끝을 느끼기 시작했다.
곧 들이닥칠 것이니 준비하라.
병사들은 무기를 들고 경계를 섰으나 주저앉은 마음들은 좀처럼 일어나지를 못했다. 대국의 병사들은 위축됐고 소국의 병사들은 부풀어 올랐다. 전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승패는 이미 굳어져버렸다.
7월 29일 새벽. 어둠은 보이지 않기에 두려움을 품는다. 두려움을 뚫으려는 자들이 북에서부터 내려왔고 두려움을 막으려는 자들은 남쪽에서 진을 쳤다. 청의 군사들은 어둠의 뒤를 응시했지만 눈보다 귀가 먼저 소리를 보았다. 발소리. 함성. 나팔 소리. 누군가는 꿈이기를 바랐고 누군가는 깨어나길 빌었다.
일본군은 어둠을 업고 다가왔고 청군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적들이 쓰러졌으나 아직은 부족했다. 일본군 중 일부는 안성천을 건너 청군의 허리를 치고자 했으나 불어난 물에 빠져 죽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일본의 주력부대가 후방에 있는 청군을 때렸다. 양국의 군대는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죽였으나 쓰러지는 이들의 수는 서로 달랐다. 동이 터왔고 서로의 모습이 빛을 따라 드러났다.
퇴각하라.
청의 지휘관이 명령을 내렸다. 쌓여있는 무기와 식량은 챙기지도 없애지도 못했다. 청군은 남서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추격하라.
일본의 지휘관이 명령을 내렸다. 청군이 챙기지도 없애지도 못한 무기와 식량을 차지했다. 일본군은 남서쪽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목숨을 잃은 청군의 수는 헤아리기에 많았으나 목숨을 잃은 일본군의 수는 그보다 적었다. 살아남은 청의 군사들은 아산으로 숨어들었고 일본의 군사들이 쫓았지만 찾지 못했다. 따라온 자들은 아쉬워했으나 고개를 꼿꼿이 세웠고 쫓긴 자들은 안도했지만 눈을 땅으로 향했다. 패한 청군은 공주로 속속 모여들었다.
7월 31일. 승리한 일본군은 성환을 출발해 용산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패배한 청군은 공주를 출발해 평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8월 1일.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해 뒤늦은 선전포고를 하였다. 8월 5일. 일본군은 용산에서 개선식을 열어 승리를 자축했고 청군은 패배를 곱씹으며 비참한 행군을 이어갔다. 1894년의 여름은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