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01. 1894년 9월 15일 평양성 전투를 다루었다. 평양성 전투는 조선땅에서 청과 일본이 벌인 마지막 전투였으며 이 전투로 청은 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일러두기 02. 주요 인물들의 이름은 쓰지 않았다.
일러두기 03. 참고한 도서와 웹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1) <청일전쟁 국민의 탄생>, 오타니 다다시, 이재우 옮김, 오월의봄.
2)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한상일 한정선, 일조각.
3) <갑오>, 만국보관 편저, 이창주 옮김, 서해문집.
4)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카토 요코, 윤현명 옮김, 서해문집.
5) 참고 웹사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Pyongyang_(1894)
워낙 전쟁을 하는 곳은 시체의 땅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凡兵戰之場 立屍之地 必死則生 幸生則死。
-오기, <오자병법> -
평양성. 9월 초입. 늦여름 대동강은 조용히 흘렀지만 성 안은 술렁거렸다. 전쟁이 시작되고 달 하나를 채웠지만 아산에서 전투 후 청과 일본의 충돌은 없었다. 다만 아산에서부터 평양까지 행군을 한 이들에게는 매일이 사투였다. 뜨거운 볕에 한 달을 시달렸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조선땅에 자리를 잡아버린 일본군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렇게 걷다가 쉬다가 멈추기를 거의 한 달. 평양성에 도착해서야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와 패전하여 남쪽에서 올라온 부대가 한 곳에 모였지만 뜻은 갈렸다.
철수하여 훗날을 도모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결국은 성을 지키자 했으나 모두 마음이 같지는 않았다. 한쪽은 살자고 했고 한쪽은 죽자고 했다. 살자는 마음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갖게 했고 죽자는 마음은 서로 같은 생각을 품게 했다. 평양성 성벽은 견고했으나 뜻에는 균열이 생겼고 적을 맞이하기도 전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9월 15일 새벽. 좋지 않은 날씨. 일본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환에서 청군을 패주 시킨 부대가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 근처 보루를 공격했다. 세 개의 보루 중 하나를 빼앗았으나 두 개는 얻지 못했다. 어서 이겨 점령하자는 조바심에 서둘러 공격하였으나 청군의 기관포와 연발총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오후 즈음에 퇴각하였다. 많은 비로 전쟁터는 진흙탕이 되어 버렸다.
같은 날 새벽. 일본군의 다른 부대가 평양성 외곽 북쪽에 있는 보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루는 하나씩 차례대로 넘어갔고 현무문과 목단대까지 점령했으나 평양성 을밀대에서 막혀 고전(苦戰)하였다. 정오가 되기 전에 청군이 성 밖으로 두 차례 몰려나와 일본군을 세차게 공격하였으나 총과 포에 격퇴당했다. 이 공격에서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자 했던 지휘관이 맨 앞에 섰다가 포탄에 몸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 몸이 흩어지자 그 말들도 허공에 흩어져 버렸고 그나마 버티고 있던 마음들도 흩어져 버렸다.
오후 4시 30분. 갑자기 을밀대에 백기가 걸렸고 저녁 8시가 되자 청군은 성을 나서 북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위에서는 비가 쏟아졌고 벼락이 쳤으며 아래에서는 일본군의 공격이 들이쳤다. 죽자는 마음으로 싸우다 죽은 이들과 살자고 나섰다가 죽은 이들의 합이 2,000명이 넘었고 잡힌 이가 600명을 넘어섰다.
9월 16일 새벽. 비어버린 평양성을 일본군이 차지했고 청군이 버리고 간 식량과 무기를 얻었다. 평양에서 벗어난 청군은 걷고 걸어 압록강을 건넜고 반도를 떠났다. 청은 조선에서 쫓겨 나갔다. 탑은 결국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졌고 그 위에 발로 섰던 이들은 손으로 매달릴 뿐이었다. 반도를 덮은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고 조선의 줄타기는 더욱 위태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