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01. 시모노세키 조약에 대해 다루었다.
웨이하이위까지 점령되고 약 보름 후인 1월 31일. 배 한 척이 일본 히로시마로 닿았다. 그 배에는 청 조정에서 보낸 강화 사절단이 타고 있었다. 청에서는 담판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일본에서는 거부했다. 전권 위임장 효력에 대해 문제를 삼았고 더 권한이 있는 이가 오기를 바랐다.
청 조정은 이홍장을 불러들였다. 일본에게 영토를 넘기고 전쟁을 일단락 짓거나 수도를 옮겨서라도 계속 싸우자는 사이에서 논의가 길게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의 요구는 세 가지였다. 영토를 넘길 것. 배상금을 지불할 것. 그리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인정할 것.
새로운 사절단을 태운 배가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봄에 가까운 3월 20일. 1차 회담이 시작됐다. 청은 먼저 휴전을 제안했으나 일본은 거부했다. 다만 휴전의 조건으로 톈진, 산하이관 점령을 내걸었다. 그 장소들은 베이징과 지척이었고 청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3차 회담까지 끝난 3월 24일. 이홍장은 가마를 타고 숙소로 출발했다. 누군가가 가마를 향해 총을 쏘았다. 심장을 노렸으나 빗나갔다. 총알은 이홍장의 왼쪽 눈 아래 뺨을 뚫었다. 잡힌 이는 말했다. 이 전쟁의 책임은 이홍장에게 있으니 그를 쏘았다고. 강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바람과는 다르게 그 총알은 휴전을 앞당겼다. 이 사건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고, 사절단이 청으로 돌아가면 교섭이 중단될 것을 염려했다. 3월 30일. 휴전이 이루어졌다. 청과 일본 사이의 모든 교전은 종료되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협상은 계속되었다. 일본의 무리한 요구도 계속되었다. 양보를 바랐으나 통하지 않았다. 일본의 군함들이 시모노세키 해협을 거쳐 청으로 향했다. 위협이고 협박이었다. 4월 14일. 청 조정에서 사절단에게 전보가 왔다.
조인하라.
4월 17일. 청과 일본 사이 조약이 체결되었다. 청은 요동반도를 빼앗겼다. 대만과 펑후제도를 내어주었다. 막대한 배상금을 갚아야 했다. 일본이 청 본토에서 통상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야 했다. 그리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인정해야 했다.
1894년 7월 25일 조선 풍도 앞바다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은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사실상 끝이 났다. 9개월에 가까운 기간. 청과 일본의 자리가 뒤바뀌었다. 하지만 조선의 자리는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