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지옥문

by 서린

일러두기 01. 1894년 11월 21일 뤼순(여순) 전투와 학살을 다루었다.

일러두기 02. 글의 중간쯤 묘사가 잔인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주롄청 전투 이후 만주를 밟은 일본군은 서쪽을 향해 나아갔다. 서쪽에는 요동반도가 있고 그 끝에는 뤼순항이 있다. 뤼순항은 배가 들어가고 나오는 길목은 하나로 좁고 육지 쪽에서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전함을 수리할 수 있는 장비들이 있다. 청이 뤼순항을 잃는다면 청의 북양함대는 힘을 회복할 기회를 잃게 된다. 그리고 일본은 바다를 얻고 만주를 품게 된다.


1894년 11월 21일.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새벽. 산 아래쪽에서부터 검고 작은 점들이 움직였다. 그 검은 점들은 산 위를 향했다. 왼쪽에 있는 산도 오른쪽에 있는 산도 몰려오는 점들을 향해서 불을 뿜었다. 요란하고 불안한 총과 포의 소리가 반도 끝을 덮었다.


점은 면이 되어 산을 덮어오기 시작했다. 멈추는 듯하다가 올라오고 비키는 것 같다가 다가왔다. 왼쪽에 자리한 산이 먼저 점으로 덮여버렸다. 청의 군사들은 항구 뒤 작은 산과 함께 선이 되어 그 점들을 막아섰다. 얼마 후 오른쪽에 있는 산 위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산 위에서 일본군을 향해 포탄을 쏘던 포가 하나씩 잠잠해졌다. 시가지 앞에서 저지선을 세워 일본군을 막아섰던 청의 병사들의 마음도 잠잠해지고 말았다. 잠잠해진 마음은 방아쇠를 당길 힘을 잃는다. 선은 부러지고 흩어져 점이 되어 시가지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묘사가 약간 잔인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들이 있었다. 생긴 모양들은 보통 나무와 달랐다. 가지도 뿌리도 없었다. 나무를 닮은 것은 하늘을 향해서 서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나무에는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열매는 수박만 했다. 그 열매들은 눈과 코와 입 그리고 귀를 갖고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닫혀 있었다. 보통 나무 열매는 가지에 매달려 있으나 이 나무의 열매는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밧줄은 왼쪽 귀와 오른쪽 귀를 꿰었다. 나무 근처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누워있었다. 어떤 것은 엎드려 있고 어떤 것은 비스듬히 누웠다. 사람의 형상을 한 그것들은 나무에 열매를 내어주고 힘을 잃었다.


청의 병사들은 포로로 잡은 일본의 병사들을 꿇어 앉혔다. 한쪽에는 뿌리 없는 나무를 심었다. 칼로 하나씩 쳤다. 머리를 잃은 몸들은 널브러졌다. 머리들을 나무에 매달고 길을 떠났다. 일본군에게 남긴 것이었다.


나무를 심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일본의 병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그들은 이를 갈았다. 그냥 두지 않겠다고 했다. 철저하게 갚아주자고 했다. 가루로 만들자고 했다.


청의 패잔병들은 점으로 흩어져 뤼순 시가지로 숨어들었다. 더 멀리 도망하기도 했다. 일본군은 시가지를 훑기 시작했다. 뤼순이 함락된 후. 동료의 처참한 모습을 본 일본 병사들은 분노의 등에 올라타서 고삐를 쥐었다. 고삐를 한 번 당기자 분노는 광기가 되었고 한 번 더 당기자 실성한 듯 날뛰었다. 지옥문이 열리고 살아있는 귀신들이 나왔다. 반항하면 찔렀다. 부정해도 찔렀다. 구분 없이 베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늙든 베었다. 패잔병이 도망쳐 들어간 마을에는 불을 질렀다. 도망갈 곳은 없었고 숨을 곳도 없었다. 전투가 아니었다. 패잔병 소탕도 아니었다. 도살이고 학살이었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사라졌고 흔적들은 남았다. 적막한 틈으로 귀신들이 오고 갔다. 모두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것처럼 허연 눈을 치켜뜨고 살아 있는 것들을 찾고 또 찾았다. 산 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목숨을 구걸했다. 귀신들은 숙이는 고개를 눌러 칼을 들었다. 빌던 손은 축 처졌고 무릎은 풀렸다.


앞에서는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고 했다. 문명국이 된 일본이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을 깨우는 전쟁이라 했다. 이어지는 승리에 일본은 고개를 점점 더 높게 들었다. 위를 바라보느라 뒤에서 열린 지옥문을 보지는 못했다. 그 문에서 나온 귀신들도 보지 못했다. 지옥문은 열렸으나 언제 닫힐지 몰랐고 귀신들은 나왔으나 언제 돌아갈지 몰랐다. 사람과 귀신이 한데 어울려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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