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8_깊은 미안함

by 서린

늦은 밤. 운전을 하다가 차 오른쪽 앞에 뭔가가 보였다. 사체였다. 강아지였을까. 아니면 고양이었을까. 이미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형체도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눈치를 채고 뭔가의 사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덜컹.


내 바퀴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갔다. 미안했다. 사체였지만 미안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을 텐데. 죽어서도 편하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를 않았다. 그렇게 지나가고 1초 만에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5년 전이었다.


2019년. 서호주.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여행 중이었다. 한 달 일정이었는데 대략 일주일 정도 운전을 해야 했다. 그때는 정말 긴장했다. 운전석도 차량 진행 방향도 반대. 착각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신경줄이 상당히 팽팽했다. 거기에 더해서 사막 지대에 들어가면 핸드폰 신호도 안 잡히는 구간이 있어서 더 그랬다. 차량에 문제가 생겨서 도중에 멈추기라도 하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길가로 정말 많이 보이는 게 있었다. 캥거루 사체. 중간에 튀어나오는 게 없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전방을 쳐다봤다. 운전이 피곤한 건 둘째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게 더 피곤했다.


여차저차 최종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작은 어촌 마을이었는데 이름은 데넘. 서호주 북쪽 샤크베이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1박을 한 후에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몽키미아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몽키미아는 돌고래로 유명했다. 과거 어느 시점부터 어부들이 돌고래에게 물고기를 줬는데 그 돌고래들이 대대손손 아침마다 그 마을 앞바다로 온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가 봐야 했다.


규정 속도는 90km. 도로 위에는 우리 차량이 전부. 돌고래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이동 중이었다. 중간쯤 갔을까.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량 앞유리로 뭔가가 확 튀었다.


뭐야.


내 물음보다 생각이 더 빨랐다.


캥거루다.


속도를 줄이고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처음 겪는 일이라서 판단이 안 섰다. 30초 정도 고민을 했을까.


일정에 맞춰야 한다. 바로 가자.


다시 차를 몰았다. 1분 정도 몰았을까. 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왔다.


이건 아니지.


차를 돌렸다. 사고 지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도로가 더 길게 느껴졌다. 고작 1분을 더 간 거였는데. 어느덧 도로에 쓰러진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길가에 세운 후 캥거루에게 다가갔다. 크기는 중간쯤. 아래로 창자가 보였다. 숨은 아직 붙어있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바라만 봤다. 그 캥거루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색색거렸다. 미안했다. 너무도. 잠시 후 캥거루의 숨이 완전히 멎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지만 캥거루 사체를 도로 위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다음에 오는 차를 위해서라도 일단 치워야 했다. 캥거루 앞발을 잡고 당기려고 해 봤는데 무게가 꽤 나갔다. 혼자 끌기는 어려웠다. 학생 몇 명을 불러서 다시 해봤다. 그래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그냥 잡아서 끌면 창자가 다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멀리서 오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나는 그 차를 향해 양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차는 승합차였는데 여행객들을 태우고 몽키미아로 향하는 것 같았다. 운전석에서 덩치가 큰 사람이 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막 상황 설명을 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은 두 팔을 들고 나를 진정시키는 듯한 몸짓을 했다. 그렇게 바로 캥거루 사체 쪽으로 가더니 익숙하다는 듯이 꼬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확 끌고는 길가 덤불 뒤로 갔다. 사체를 그 뒤에 두고 나와서 나에게 한 첫마디가 이랬다.


괜찮다. 나는 캥거루를 몇십 번 쳐 봤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이렇게 말해줬다.


괜찮아. 오늘 운 좋은 날이 될 거야. 좋은 날이 될 거야.


당시 나는 마음에 정말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처져 있었다. 그 마음을 안다는 것처럼 말했다. 위로였다. 당황한 나를 향한 위로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마음은 정말 좋지 않았다.


몽키미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정비소가 따로 없었고 수리를 하려면 데넘으로 돌아가야 했다. 일단 일정을 보냈다. 그곳에서도 그 사람을 또 마주쳤다. 그때마다 같은 말을 해줬다.


오늘 행운이 가득한 날이 될 거야.


그날 감정은 정말 뒤죽박죽이었다.


데넘으로 돌아갔다. 도착하자마자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 설명을 했더니 정비사를 한 명 보내준단다. (다행히 차량 렌트를 할 때 보험을 들었다.) 얼마 있다가 그 마을의 정비사가 와서 차량을 살펴봤다. 차를 보더니 몇 번을 혼잣말로 이랬다.


f**k...


알고 보니 워낙 달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 그 정도로 충격이 심했던 것이다. 사고 후에 무사히 다녀온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었다. 정비사가 이 차량은 수리를 들어가야 하고 새로운 차량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차가 오는 게 하루 정도 걸린다고. 어쩔 수 없이 데넘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했다.


데넘을 떠나는 날이었던가. 학생들과 그 마을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엽서 쪽으로 가니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었다. 캥거루 사진으로 만든 엽서. 마침 테두리도 검은색이어서 꼭 영정 사진 같았다. 고민하지 않고 샀다.


남쪽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운전을 하기 전에 그 엽서를 운전석 오른쪽에 뒀다. 앞유리에 비친 캥거루와 시선이 맞닿았다. 미안했다. 운전을 하는 동안 내내 그 얼굴을 쳐다봤다. 내 나름의 애도였다. 동시에 경각심이었다. 또 사고가 나서는 안 된다는. 학생들의 안전도 그렇지만 한 생명을 나 때문에 또 잃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순식간이었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운전하던 차에 치여 한 생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사고 직후 현장을 보지 않고 바로 출발했던 이유는 일정에 맞추자는 게 아니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미안하고 무섭고 슬프고 당황스러웠다. 그 사체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게 솔직한 이유였다. 그나마 (이기적이지만) 위안이 되는 한 가지는 그 캥거루가 죽기 직전 곁에 있어준 것. 숨이 넘어가기 전에 미안하다고 한 것. 나는 여전히 그 캥거루에게 미안하다. 정말 깊고 깊은 미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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