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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by 서린

교사 연수를 간 적이 있다. 그때 교사로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어떤 교사일까. 어떤 선생님일까.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고 무슨 형상과 어울릴까. 그때 떠올린 게 바로 울타리였다.


20대 초반.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다. 교사가 꿈이었기에 그 경험을 쌓고 싶었다. 어리숙했고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잘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때였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뿐이었고 기준은 모호했다. 언젠가 한 번 복도 중앙에 자유 게시판을 만들어준 적이 있다. 쓰고 싶은 무엇이든 쓰라는 의도였다. 각자 생각들이 그 게시판을 통해 오가기를 바랐다.


얼마 후. 게시판을 보고 나서 경악했다. 욕과 비난이 한가득이었다. 맙소사. 결국 그 게시판을 철거해 버렸다. 당시 나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간섭은 최소화하고 의사를 무조건 존중하고자 했다. (어쩌면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받았던 '억압'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학생을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결과는 내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사실 잘 몰랐다. 그런 감각도 없었다. 게시판 사건은 그저 한 가지 예시일 뿐. 결국 나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상황에 끌려 다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20대 초반의 그 경험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교사로서 실패였다. 완전한 실패였다. 그때 경험은 정말 긴 세월 동안 나를 수렁으로 잡아끌었다. 정말 긴 고통이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또 먹었다. 경험과 생각이 쌓이고 또 쌓였다. 나는 내 나름의 기준을 갖기 시작했다. 선을 긋기 시작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했고 우려되는 점이 있으면 제안하기 전에 대책부터 세웠다.


그냥 풀어놓는 게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그저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나는 '울타리'가 되기 시작했다. 목장의 범위는 내가 정해주는 것이다. 이 경계는 넘지 말 것. 이 울타리 안에서 뛸 것.


어쩌면 자유를 제한하는 모양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봤다. 울타리의 역할은 가두는 것만이 아니라고 봤다. 울타리는 넘어가지 말라는 말과 동시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나를 넘어가 봐.


교사인 내가 세운 기준과 틀. 그 안에서만 있지 말고 뛰어넘어가 보라는. 다리의 힘을 기르고 뛰는 연습을 해서 울타리를 넘어간 양과 울타리도 없이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양. 나는 전자를 택했다. 나를 설득할 수 있고 내 논리를 뛰어넘길 수 있다면. 그렇게 넘어간 양은 기꺼운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다.


내가 조심해야 하는 건 한 가지. 울타리가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는 것. 내가 너무 높으면 학생들은 넘어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경계는 세워두지만 마음먹으면 넘어갈 정도의 높이로. 그런 울타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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