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아는 형이 타로 카드를 갖고 왔다. 그 당시 최대 관심사는 연애.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 점을 봐 주었는데 결론은 '노력하면 될 수도 있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에 붙여도 통할 대답인데 그때는 심각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도 점을 봐 주었는데 그 결과보다 더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있다.
카드는 삼각형 형태로 배열이 되어 있었다. 맨 아래에는 10장, 그 다음 줄은 9장, 그 다음 8장... 이런 식이었다. 궁금했다. 배열이 왜 이런지.
"형, 카드 배열이 왜 이런 식이에요?"
"10장이 10대, 9장이 20대, 8장이 30대... 나이를 먹을수록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니까."
아하. 그렇구나.
학교 설명회가 예정되어 있다. 학교에 대해 설명할 시간은 약 20분. 그 설명을 만약 내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봤는데 떠오른 그림이 열쇠와 문이다.
위에서 말한 타로 카드를 바닥에 세운다고 치자. 그 카드를 문이라고 한다면 학생들은 10개의 문 중에서 하나를 열게 될 것이다. 열 수 있는 문의 개수는 갖고 있는 열쇠 개수에 따라 달라진다. 열쇠가 많을수록 선택의 여지는 넓어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열쇠'를 하나씩 만들어간다. 그 열쇠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선생님들의 역할이라고 본다. 다양한 경험과 그에 따른 생각들. 그런 것들이 열쇠가 된다.
열쇠가 하나라면 열 수 있는 문은 하나다. 둘이면 두 개다. 열 개라면 열 개의 문 중에서 고민을 할 것이다. 가능하면 한 개보다는 다섯 개, 다섯 개보다는 열 개를 갖게 하고 싶다.
많은 열쇠 중에 하나를 사용한다고 나머지가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 열쇠들은 다음 관문을 통과해야 할 때 또 꺼내어 맞춰볼 수 있다.
여기서 학생들이 하나씩 만드는 열쇠가 언제 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조차도. 확실한 것은 하나다. 있으면 필요할 때 꺼낼 수 있지만 없으면 그저 열 수 있는 문을 열거나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갈 수 있을 뿐이다. 즉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학생 때 만든 열쇠가 하나였고 앞에 서 있는 문도 하나였다. 그 문 뒤로 난 길은 대학 입시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진 열쇠가 하나다 보니 다른 문을 열 생각도 못하고 지치거나 방황하기 일쑤였다. 내가 10대 시절에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다면. 이런 아쉬움이 없잖아 있다.
사실 그 열쇠들은 모두 각자 내면에 있다. 교육은 그것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고 하면 맞을까. 우리 교육과정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 설명이면 설명회에 참석하시는 분들도 직관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