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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교사

by 서린

20대 중반. 가톨릭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수련원에서 잠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학생들을 데리고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해 볼 수 있었다. 보통은 2박 3일 일정으로 들어오는데 내가 가장 즐겼던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밥 때문이 아니다. 쉴 수 있어서도 아니다. 점심시간은 오히려 바빴다.


점심시간은 쉬는 시간까지 합해서 두 시간. 먹고 나서 뛰어놀기까지 넉넉했다. 보통은 30분 내로 식사들을 마치고 나머지 90분 동안은 노는 거다. 학생들은 신나게 논다. 수련원 선생님들 그리고 수사님들도 학생들과 논다. 보드게임, 야구, 농구, 축구, 수다 떨기... 90분을 지치지 않고 놀았다. 학생들과 노는 게 즐겁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있었다.


학생들이 노는 것을 보다 보면 쭈뼛거리며 주변을 맴도는 학생이 꼭 있다. 농구를 하고 싶은데, 축구도 하고 싶은데, 같이 놀고 싶은데 말을 꺼내기는 어색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선생님들은 그런 게 없다. 끼어 들어서 같이 뛴다. 학생들도 수련원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그런지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분 정도 뛰다가 주변을 돌아본다. 옆에서 지켜보던 학생이 눈에 들어오면 손을 들어 부른다. 터치. 내가 뛰던 자리는 이제 그 학생에게 넘어갔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우리는 다른 곳을 또 기웃거린다.


이런 역할을 이탈리아어로 아시스뗀떼(assistènte)라고 들었다. 영어 어시스턴트(assistent)와 같은 뜻이다. 이 역할은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 하나는 놀이에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것. 또 하나는 그렇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다치는 일은 없는지, 싸우는 일은 없는지, 엉뚱한(?) 짓을 하지는 않는지를 자연스럽게 살피게 되는 것.


나는 무엇보다 소외된 사람이 없이 함께 어울리도록 (거의 눈치 못 채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 만약 옆에 서서 "야, 얘도 같이 놀아야지!"라거나 "너희끼리만 놀면 다냐!"와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놀던 애들도 표정은 굳었을 것이고 그렇게 놀이에 끼어든 아이도 많이 무안했을 거다. 같이 놀면서 그 무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슬쩍 돕는 것. 이것만큼 좋은 방식이 있었을까.


여기까지 쓰고 나니 반성을 하게 된다. 요즘 나에게 점심시간은 쉬는 시간이라서. 혹은 업무를 보는 시간이라서.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자기들끼리 놀고 떠든다. 나도 물론 장난도 치고 농담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들쑤시고 다니지는 않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피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들과, 학생들과 잘 놀고 있는지. 그저 '교사'라는 직업으로 자리를 틀어잡고 있는 건 아닌지. 같이 노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나는 좀 더 노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일하는 교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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