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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모토(motto)

by 서린

나의 삶과 생각으로 세운 울타리 안에서, 학생들은 질문하고 도전하고 성장하며, 결국은 그 울타리를 넘어가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나의 존재 목적이다.


선생님들도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있다는 것을 학생 때는 몰랐다. 나도 그런 날이 있다. 어딘가 숨어 있고 싶은 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은 물론 즐겁다. 농담과 장난으로 서로 마음이 채워지고, 진지한 물음과 답변에서 서로가 각자의 답을 찾기도 한다.


요새는 조금 지친 것 같다. 지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 큰 두 가지 범위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업무와 관계. 이건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에 치이거나 관계에 치이거나. (학생 입장에서는 공부에 치이거나 관계에 치이거나.)


이런 때는 내가 왜 이러는지 자책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자책할 일도 아니고 말이다. 사람이라면 지치는 날이 있다. 그런 때는 쉬는 게 먼저다. 쉴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쉰다. 그렇게 쉼으로 자신의 지친 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때부터 마음은 다시 일어설 준비를 시작한다.


일어설 때 잡을 수 있는 끈이 필요했다. 그 끈은 좌우명, 비전, 모토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챗GPT를 열었고 비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말을 걸었다. 말 몇 마디가 오가는 중에 GPT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네 교육 철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 적 있어?"


없었다. 한 문장으로 표현을 해본 적이. 고민이 시작됐다. 교육자, 교사로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것인지.


어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다듬은 적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지쳐서 숨어 있다가도 그 끈을 잡고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울타리가 떠올랐다. 나는 내 역할을 울타리로 정의한 적이 있었다. 가두는 것 같지만 넘어가게끔 해주는. 울타리라는 단어부터 시작해서 문장을 만들어내면 될 것 같았다.


1) 울타리는 내 삶과 생각 그 자체였다. 학생들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보여주는 행동 하나가 모두. 그래서 '나의 삶과 생각으로 세운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2)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이가 없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이는 배우는 자가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때문에 '학생'이라는 단어는 빠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배우는 자들은 질문하고 도전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학생들은 질문하고 도전하고 성장하며'라고 표현했다.


3) 마지막으로 내가 세운 울타리를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울타리를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생각을 거쳐서 정리된 것이 맨 위에 쓴 문장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울타리는 한 번 세우고 끝이 아니다. 헐거워진 부분은 다시 조이고 부서진 부분은 보수를 해야 한다. 내 삶과 생각도 마찬가지다. 헐거워진 생각은 다시 바르게 하고 부서진 삶이 있다면 다시 세워야 한다. 울타리라는 표현 안에는 나 자신에 대한 경계 또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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