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할까.
꾸벅꾸벅.
그냥 둘까.
꾸벅꾸벅.
잠 좀 깨고 오라고 할까.
결국 옆으로 꺾인 고개. 나는 일단 그냥 두기로 했다.
몇 년 전. 비폭력대화(NVC)를 수강하면서 들었던 게 있다. 문제 해결로 볼 것인지. 아니면 연결로 볼 것인지. 문제 해결은 말 그대로다. 어떤 상황을 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찾는 것. 만약 학생들이 싸웠다고 치면 문제 해결 방법으로 대략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잘잘못을 가려서 사과하도록 시키기. 반성문 써오게 하기. (과거라면) 벌세우기. 심각하다 싶으면 학폭위 요청.
연결은 이렇다. 그 당사자들이 왜 그랬는지 물어보는 것. 그리고 답변을 성의껏 들어보는 것. 이해해 보는 것. (여기서 이해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사실 연결은 문제 해결보다 더 어렵다. 조바심을 눌러야 하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꺾어야 한다. 그저 상대방의 말을 마음 다해 경청해 보는 것. 그런데 이게 꽤나 어렵다. 연결을 다른 말로 하자면 공감이다.
계속 졸고 있는 학생은 오늘만 그런 게 아니다. 이미 몇 주는 된 것 같다. 깨우기도 하고 나갔다가 오라고 하기도 해 봤다. 하지만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 학생의 문제라고 말해 버릴 수도 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쏟아부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진정 그 학생을 위한 방법일까 하는 고민에서 그런 말들이 올라오다가 막힌다. 왜 계속 졸까. 졸고 있다는 건 이 수업에 흥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혹은 흥미가 더 가고 재미가 있는 어떤 다른 활동에 시간을 더 들여서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삶 자체에 대한 권태일지도 모른다. 10대 후반에 몰려오는 막연함이나 조바심을 피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결국은 도움이 되라고 하는 수업인데 학생 스스로 재미를 못 느끼고 도움도 얻을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결국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자고 있는 사람인데 만약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도움이 안 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면...
나는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다. 졸면 조는 대로. 깨워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아니다.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궁하고 따져 묻는 게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 들어보는 것. 이곳의 모든 교육과정은 모두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 주체인 학생이 여기서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는데 나무란다고 풀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일단 나는 나를 조심한다.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말을 하게 될까 봐. 내 말은 접어두고 학생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조는 것도 결국은 신호이자 언어다. 어쩌면 그 학생은 삶의 방향성을 잃었고 사는 기쁨도 줄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해결이 아니라 연결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