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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장례식

by 서린

2023년 4월 어느 날 아침. 학교 건물 뒷마당에서 키우던 수탉 한 마리. 아이들이 지었던 이름은 루팡루이. 보드게임의 이름을 따 왔다. 출근을 했더니 학생들이 그 루팡루이가 이상하다고 했다. 가서 봤더니 말 그대로였다. 볏은 생기를 잃었고 다리는 힘이 없었고 소리를 못 냈다. 한 학생이 들어다가 마당에 내려놓았는데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기를 몇 차례. 고개를 들려고 애쓰더니 결국 눈이 감겼다. 나는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시작됐지만 몇몇 학생들은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서 땅을 파고 작은 관을 짜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도 수업을 진행해야 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목이 메었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늘 수업은 잠깐 멈추자고. 학생들도 모두 이해하는 눈치였다.


2021년 4월. 학생들과 한 마을에 견학을 했는데 그때 병아리 네 마리를 분양받았다. 수컷이 하나, 암컷이 셋. 교실 뒤에 큰 고무통을 두고는 병아리를 그 안에 넣고 키웠다. 학생들을 당번을 정해서 물, 모이를 챙겨주었고 나는 카메라를 설치해서 밤에 한 번씩 살폈다.


병아리가 크면서 고무통에서 계속 키울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몇 주에 걸쳐 마당 한편에 닭장을 만들었고 중닭으로 큰 병아리들은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학생들이 등교를 하면 마당에서는 닭 네 마리가 몰려다녔다. 어떤 때는 옆에 있는 남의 밭에 들어가서 빼내 오느라 애를 먹었다.


가을쯤 닭들이 다 크고 나서는 좀 더 어엿한 닭장을 하나 마련했고 학생들 부모님들을 모시고 닭집들이까지 했다. 집들이를 하는 동안 정작 주인공이었던 닭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었지만.


겨울이 왔다. 방학 동안에도 당번을 정해서 학교에 한 번씩 오고 갔다. 나도 당번 중 하나였는데 언젠가 깜박하고 며칠 못 간 적이 있었다. 순간 그 사실이 떠올라서 바로 차를 몰고 학교를 향했다. 마침 눈도 많이 왔던 때라 조마조마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마당에 갔더니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학생들을 무슨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닭을 안고 쓰다듬었다. 틈만 나면 마당으로 가서 닭들을 보기도 했다. 닭이 아픈 것 같으면 염려했고 보살폈다.


첫 번째 겨울을 보내고 두 번째 겨울이 오기 전에 암탉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두 번째 겨울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서 수탉이 마지막 숨을 뱉었다.


나에게는 닭 한 마리가 죽은 정도가 아니었다. 병아리를 같이 분양받아 왔던 순간들. 고무통 속에서 삐약거리던 병아리들. 사방으로 뛰던 병아리를 잡느라 고생한 아이들의 모습. 닭장을 만들던 날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마당으로 향하던 그때. 닭으로 친해진 아이들. 그 기억들을 같이 한 존재 하나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내 눈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점심시간. 조촐한 장례식이 진행됐다. 루팡루이는 아이들이 짠 관에 누웠다. 누군가가 그 안에 개나리를 따서 깔아 두었다. 갑작스러운 장례식이었지만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땅 아래 관을 넣고 묵념 후에 흙으로 덮었다. 얼마 안 있어서 마당 끝에 작은 무덤이 생겼다.


그로부터 꼭 2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났지만 루팡루이가 죽어가던 그 순간과 장례식의 광경은 사진처럼 남아 있다. 세상은 언제나 즐거움만 있지 않다. 기쁜 일이 있는 만큼 슬픈 일도 있다. 그날 수업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은 배웠다. 생명과 죽음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나 또한 배웠다. 말없이 관을 만들기 시작하던 학생들에게서 배웠고 정성껏 개나리를 깔아준 학생에게서 배웠으며 묵묵히 땅을 파던 학생들에게 배웠고 장례식에 함께 해준 학생들에게 배웠다. 죽음은 안타깝고 슬픈 일인 것이 분명하지만 살면서 정말로 필요한 배움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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