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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하자, 나중에

by 서린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내가 요청한 건 아니었다. 정해진 학생 상담 기간이었고, 순서대로 한 명씩 교무실로 가서 상담을 했다. 상담 시간은 5~10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내가 뭔가 편안함을 느꼈나 보다. 상담 자체로 위안이든 격려든 얻었나 보다. 담임 선생님께서 뭔가 특별한 말씀을 해주셨던 건 아니었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몇 마디라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 아니면 몇 주 흘렀을까. 상담을 한 번 더 받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마음. 그래서 무작정 교무실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교무실 의자에 잠깐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께서 오셨고 왜 왔는지 물으셨다.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해주셨다.


나중에 하자, 나중에.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지금은 희미하기는 하지만 그때 실망감이 컸던 것 같다. 그때 하신 그 말씀을 여태껏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그 후로는 상담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졸업을 했고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내가 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실망스러웠고 야속했다. 그런데 그 당시 선생님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이해하게 됐다. 교과목을 가르치시는 것 외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으니까. 그 와중에 상담을 진행하시기는 쉽지 않았을 것도 알게 됐으니까.




잘 알아주는 선생님.


재작년에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자신의 졸업작품을 각 선생님께 선물로 전하면서 안에 쪽지를 하나씩 붙여두었다. '무슨무슨 선생님'이라고 썼는데 나에게 준 쪽지에 쓰여있던 내용이다. 나에게는 더없는 칭찬이었다. 졸업한 학생은 듣기 좋은 말을 고른 게 아니라 나와 지내며 생각한 바를 썼을 뿐이겠지만 내가 그런 교사일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기뻤다.


나도 이곳을 다니기 시작한 처음부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듣는 것 같았지만 진심에 닿아 있지 않았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 뒤에 숨은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변화가 온 것은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면서부터였다. 우연한 기회로 비폭력대화(NVC)라는 연수에 참여하게 됐는데, 연수가 끝난 후 나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기분(느낌)에 따라 갈팡질팡하거나 우울로 오가던 나는 뭔가 큰 변화를 느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이해하는 여유가 생기자 남을 이해할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저런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당시의 나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만 그렇게 못했던 나.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던 나.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잘 알아주는 선생님'이 되면서 그 빚을 갚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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