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젊게 살기

by 서린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이래저래 장래희망을 교사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어떤 점이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두 가지를 떠올렸었는데 첫 번째는 '방학'이었다. 다른 직장에는 없는. 학교 선생님들만 누릴 수 있는 방학이라는 기간. (물론 선생님들 방학은 학생들의 방학과 다르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또 하나는 젊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 매일 학생들과 지내다 보면 젊은 감각이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젊게 살고 있느냐. 음...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은 한다. 학생들하고 말은 잘 통하니까. 사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학생들과는 스스럼이 없이 지낸다. 나도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어른이라서 나서거나 억누르지 않으려고 한다. 간혹 학생들이 선을 넘는 경우가 보이면 솔직히 얘기하기는 하지만 감정을 싣지는 않으려 애쓴다.


장난은 매일 친다. 이렇게 쓰자니 쑥스럽지만 나는 말재주가 꽤 있는 편이다. 그래서 수업을 하다가도 뭔가 떠오르면 한 마디 툭 던지는데 그렇게 학생들과 주고받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물론 수업 흐름을 완전히 망칠 정도로 빠지지는 않는다.) 학생들과 편하게 농담이든 장난이든 오갈 수 있다면(서로 선은 지키면서), 그런 선생님이라면 젊게 살 수 있으리라는 내 예측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출퇴근 시간 차 안에서는 보통 최신가요 TOP100을 틀어놓는다. 아,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최신가요부터 튼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데 효과가 있다. (발라드가 순위권이면 일으키다가 말기는 하지만) 일부러 젊은 감각을 유지하자고 듣는 건 아니지만 젊은 가수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속도의 가사를) 듣다 보면 나도 덩달아 젊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고는 한다. 한 번은 어느 기관에 외부 수업을 나갔는데 최신 가요로 퀴즈를 내는데 다 아는 노래였다. 학생들 대상이라 손을 들 수 있는 자격이 없었기에 아쉬웠으나. 아마도 내가 이렇게 최신가요를 듣는 건 매일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주변의 분위기가 관심사를 따라서 나도 그렇게 가는 것 같다는 생각. 명확한 근거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젊게 살기는 어쩌면 꼰대가 되지 않기인 것 같다. 내 과거를 떠올려보면 꼰대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내 생각이 옳고 상대방(학생)의 생각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지금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있었고 그럼에도 자존심을 내세운 적도 있었다. 어떤 학생에게는 정말 큰 상처가 됐겠구나 싶은 순간들도.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예전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나 자신을 죽이는 짓'이었다. 두려움이 앞섰고 내 고집을 내세웠다.


지금도 무언가 잘못을 했을 때 인정하고 사과하기에 앞서서 올라오는 부끄러움과 무안함, 미안함에 마음이 저민다. 그 순간 그걸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스쳐가지만 결국은 사과한다. 그게 학생이든 학부모든 동료 교사든 간에. 그럼에도 내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고 그대로 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를 말 그대로 '봐주고' 있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젊게 살자면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부터 잘 져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여하튼 내가 이렇게 신나게 살고 있는 건 학생들 지분이 크다. 내 예측은 들어맞았다.


(음... 오늘 글을 쓰다 보니 자아 성찰까지 갔는데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운명이라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