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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고 하자.

by 서린

이번부터는 현재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거꾸로 짚어 보려고 한다. 과거부터 되짚어 순서대로 쓰다 보니 '내가 왜 교사가 되었을까' 이유보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쓰게 될 것 같았다. 과정을 되짚으려는 게 아니라 교사가 된 이유를 살펴보려고 시작한 글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9년째 몸 담고 있는 이유를 정리해 보는 것이 본래 의도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2025년.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1층부터 3층까지 인사를 다닌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은 3층이니까 올라가면서 들르면 된다. 학생들, 선생님들. 손 들기, 고개 끄덕하기, 안녕이라고 인사하기. 교실마다 활기가 넘친다. 음... 아니다. 2층은 활기가 있는데 3층에 가면 활기보다는 진중한 분위기가 좀 더해진다. 2층은 중1~3학년들 교실, 3층은 고1~2학년들 교실이 있다. 나이 먹고 보면 한 살 차이는(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정말 큰 게 아니다. 그런데 10대 때는 한 살 먹을 때마다 다르다. 나비로 비유를 해보자면 이런 것 같다. 1학년 때는 애벌레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가 3학년이 되면 고치를 만들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치 속에서 자라고 있어서 고등학생 나이가 되면 뭔가 좀 더 진지하고 조용한 분위기인가 싶다. (물론 고치를 만들어서 그 속에 넣어주고 싶은 학생들도 보이기는 하는데...) 인사에 걸리는 시간은 3분 정도. 인사하는 인원은 약 30~40명 사이.


나는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다. 물론 여기서 일을 하고 있고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닌다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아이들에게도 학교지만 나에게도 학교니까. 나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학생이니까. 이곳을 다닌 지는 9년째. 9년째 재학 중인 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가 된 것은 맞다. 공교육의 교사가 아닌 대안학교의 교사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형태는 다르지만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이곳을 오게 된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우연이 연속되었을 때 운명이라고 불러도 될까. 사실 운명이라고 표현을 하는 속내는 그 우연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일 거다. '너는 내 운명'이라는 표현도 결국은 '너'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말이다. 원수 같은 회사 동료나 상사를 떠올리면서 '그래, 그 사람은 내 운명이지'라고 할 사람은 절대 없을 거다. 결국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운명이라고 부를지 말지 결정하는 건 내 몫인 셈이다. 나는 지금 다니는 나의 학교를, 내가 일하는 직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은 이렇다. 지금도 간혹 연락하는 대학 동창이 있다. 그 동창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귀가 솔깃했었다. 워낙 공교육을 '혐오'했던 나는 내 아이를 그 '구렁텅이'로 보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혐오'와 '구렁텅이'라는 표현은 진심이다. 다만 내 학창 시절 경험과 학교에 대해 남은 부정적인 인상으로 인한 주관적인 표현이며 공교육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내 느낌을 최대한 표현한 것이다.) 나도 내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일단은 그 학교에 연락을 하고는 찾아갔다. 처음 보는데 밝게 인사를 하는 아이, 작은 건물이지만 뭔가 편안한 느낌. 아, 이곳이다. 여기에 내 아이를 보내야겠다.


상담을 마친 후 보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대안학교는 교육부에 속하지 않는 학교 밖 학교이기에 지원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교육비는 내가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던 것. 어쩔 수가 없었다. 약간 실망한 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얼마 후 그 학교에서 교사를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이거다. 방법이 보였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보내면 교육비는 면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원 자격증이 필수는 아니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서류 준비를 시작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공고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고가 뜬 지 이틀 정도 지났을까. 공고가 사라져 있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엇, 공고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 갔지. 안 되는가 보다. 내가 놓쳤나 싶어서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지만 역시나 없었다.


침울해지려고 하는 순간 눈에 뭔가 들어왔다. 상단 메뉴 중에 '중등'이라는 게 보였다. 응? 이 학교가 중등도 있었어? 일단 클릭을 했다. 그러고 나서 눈에 크게 보인 글자.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 아, 이거다. 마찬가지로 교원 자격증은 필수가 아니었다. 나는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8년.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로 올 운명이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우수한 성적으로 사범대 입학에 성공했거나 전과에 성공했거나 했다면. 임용고시를 본 후에 공교육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면 여기로 올 수 있었을까. 지나간 과거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여기서 또 한 명의 '학생'으로서 배웠던 것들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배움은 공교육과는 정말 많이 다르니까. 나는 이곳에서 정말 뼈가 저릴 정도로 배웠다. 깨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배웠다. 내 한계를 마주했고 밑바닥을 손으로 짚어봤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알았다. 교사가 되려면 내 껍질부터 깼어야 하는구나. 비록 어릴 적 꿈꾸던 공교육 교사는 아니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다. 나는 내가 이곳에서 학생들과 보낸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순간들을, 앞으로 올 날들을 내 운명이라고 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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