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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사진 찍으려고?

by 서린

잠깐 시간을 과거로 돌려 보자. 내가 방황의 시절을 보내고 있던 2000년. 그로부터 7년 전. 1993년 초였던가.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졸업식이 끝났고 운동장이 거의 텅 비었을 무렵 나는 학교 건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 해야 할 심부름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확인을 하려고 가는 길이었다. 계단 끝에 다다르니 6학년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같이 사진 찍으려고?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콧등은 시큰해지고 속에서부터 눈물이 올라온다. 죄송스러워서. 후회스러워서. 그때는 몰랐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알았다. 그때 사진을 같이 찍었어야 하는데. 사진 한 장 같이 찍는 게 뭐라고. 그날, 어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심부름 때문에요.


담임 선생님께서 그 심부름은 해결이 돼서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던가. 나는 곧장 인사를 드리고 학교를 떠났다.


내가 졸업한 다음 해에 우연찮게도 내 동생 반 담임 선생님을 맡으시면서 후로도 소식을 듣기도 했고 한 번은 동생과 찾아뵙기도 했다. 그때는 이미 정년 퇴임을 하셨던 때. 그러고 나서는 다시는 뵙지 못했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면서 문득 6학년 담임 선생님 생각이 나고는 했다. 하지만 감히 수소문하거나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가장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이 내 동생을 잘 기억 못 하시더라는 것이었기에. 졸업한 지 15년이 넘어갔으니 나이도 80세 가까이 되셨을 텐데. 두려웠다. 살아는 계실까. 뵙더라도 기억은 하실까. 그렇게 마음으로만 담아두고는 사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두렵다는 이유로 소식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소식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정말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그 소식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 마음속에서 정말 돌아가실 것 같아서.


아뇨. 심부름 때문에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후로 나는 알았다. 그때 서운하셨겠구나. 무게는 다를지라도. 헐레벌떡 계단으로 뛰어올라오는 제자를 보시고는 '같이 사진 찍으러 오나 보다'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내가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선생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부족하고 어리숙한 아이였지만 차별하지 않으셨고 혼내지 않으셨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지만 그때 느낀 감정들은 남아있다. 정말로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셨기에 나는 졸업식이 끝나고 계단 위에서 뵈었던 그 순간을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장래희망에 '교사'를 계속 썼던 이유는, 그리고 기어이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9년째 할 수 있는 그 힘은 어쩌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같이 사진 찍으려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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