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이 끝난 겨울방학. 나는 내 방 이불 속에 있었다. 겨울방학 내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몸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왔다 갔다 했지만 내 정신은 이불 속에 계속 있었던 건 맞다. 학사경고 직전까지 간 평점. 기숙사에서 통보가 왔다. 문구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정중했고 격식이 있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너 성적이 안 돼서 기숙사에서 나가야 돼.
좌절감과 열패감. 거기에 더해서 한 가지 더 있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는 학과군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두 개의 학과를 묶어서 학과군으로 둔 다음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게끔 하는.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그런 제도를 만들었는가 싶다. 취지는 전공을 선택하기에 앞서서 직접 겪으면서 고민을 깊이 해보라는 뜻이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부작용을 생각 못한 모양이다. 내가 바로 그 부작용의 결과물이었다.
내가 입학했던 건 영문중문학과군. 2학년을 앞두고 전공을 선택할 때가 됐는데 영문과, 중문과 중에 영문과로 인원이 몰렸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몰린 쪽 인원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달리기 선착순일 리는 없다. 당연히 성적순이었고, 기숙사에서 쫓겨날 성적이니 나는 정말 운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중국어를 배우게 된 것이다.
수시 면접에서는 국산품 애용하다가 떨어지고, 1학년 때는 고삐가 풀려서 평점 떨어지고, 기숙사에서 쫓겨나고(쫓아낸 사람은 없지만), 원하는 과에 못 들어가고. 떨어지고, 쫓겨나고, 못 들어갔으니 들어갈 곳은 이불 속 뿐. (실연의 아픔까지 얘기하면 너무 비참해지니까 그건 일단 접어두자.)
겨울방학에서 '방학'이 사라졌다. 겨울이었다. 완전한 겨울. 몸만 추운 게 아니었다. 당시 나는 자괴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리셋(reset)하고 싶어졌다. 그래. 재수를 하자. (지금 내가 과거로 가면 뜯어말리기는 할 건데) 그때는 재수를 하면 뭔가 방법이 보일 것 같았다.
방학 중에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스키장에 놀러 가자고. 더 정확히는 스키장 옆에 있는 리조트. (스키 탈 돈도 기술도 없었다.) 집에서는 부모님께 재수에 대해 고민을 좀 하고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아, 물론 리조트로 가서 고민을 하겠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앞뒤가 안 맞는다. 절에 가든지 해야지 리조트로 친구들하고 놀러가서 무슨 고민을...) 친구들과 놀던 그때가 생각난다. 볼링장, 노래방, 술도 한 잔. 누군가가 잠깐 눕혀놓은 스키 장비 옆에 서서 스키 타러 온 것처럼 사진도 찍었다. (왜 그랬지...)
돌아오자마자 나는 결심을 밝혔다.
재수하기로 했어요.
안 하면 안 되겠냐.
네.
여기서 설명을 좀 하자면 맨 마지막에 있는 '네'는 '네, 안 되겠는데요'가 아니라 '네, 안 해도 되겠네요'라는 뜻이다. 여기까지 쓰니 과거의 내 등짝을 한 대 '갈겨' 주고 싶은 생각이 순간 솟구쳐 올라온다. 아니, 재수를 할 거면 고민 깊이 하고 제대로 결심을 해서 관철을 시켜야지, 안 하면 안 되겠느냐는 한 마디 듣고 바로 꼬리를 내릴 거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미래의 내가 생각해도 참... 지금 내 등짝을 때릴 수도 없고...) 어쨌든 나는 재수를 포기했다.
잘 들여다 보면 나는 그 상황에서 그저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재수도 결국은 또다른 '이불 속'이었을 뿐. 좌절감, 자괴감, 열패감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거다. 만약 내가 그때 재수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아가려는 재수'가 아니라 '도망치려는 재수'였다면 말이다. 아마도 이불을 걷어내기는 좀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3월 개강을 앞두고 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겨울 바다 위에 있었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을 맞이했다. 그때는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