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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교사

by 서린

학생생활기록부라는 게 있었다. 매해 장래희망을 쓰는 칸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 그 칸에는 항상 '교사'라고 썼다. 중학생 때부터였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칸을 비워둘 수는 없고 가장 가까운 직업이 (매일 보는) 교사라는 직업이었기에 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교사가 안 되면 안 될 엄청난 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 칸에 교사라고 썼다.


내 계획은 단순했다.


1) 수능을 잘 본다.

2) 사범대에 입학한다.

3) 임용고시를 잘 본다.

4) 교사가 된다.


1번부터 실패였다. 막연하게 '잘 본다'라고 썼지만 더 정확히 쓰자면 '사범대 경쟁률을 뚫을 수 있는 정도 성적을 거둔다'였다. 사실 내 수능 성적은 평소 모의고사보다 높았다. 수능을 본 당일, 가채점을 해본 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모두는 아니어도)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다. 난이도가 평소 모의고사보다 낮았던 것이다. 상대평가였으니 사실 그 전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던 것. 그래도 평소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결과로는 어차피 비슷하지만 점수라도 (평소보다) 높게 나왔으니 그나마 위로가 됐다고 할까. 그 점수로 어느 대학 사범대에 수시로 도전했다. 면접을 봤다. 떨어졌다. 나는 지금까지도 면접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 확신을 한다.


질문: 나라 경제가 어렵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변: 국산품 애용이요.


아마 저 앞뒤로 뭔가 질문이 더 있었을 텐데 내 기억에는 저 질문과 답변만 남아있다. 저 답을 하고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이미 알았다. 떨어지겠네. 국산품 애용이 뭐냐. 지금 생각해 보면 아예 틀린 대답은 아니었다. 당시 면접을 본 교수님이 질문한 경제는 내수 경제였고(세계 경제나 미국 경제는 아니었을 테니) 돈이 나라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돌아야 하니 국산품 애용도 답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머리가 하얘졌었고(갑자기 경제라니!) 대답도 확신은 없었다. 그저 평소에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말을 듣고는,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 반복 재생을 했을 뿐. 교수님도 눈치채셨을 것이다. 내 하얘진 속을 보셨을 것이고 확신 없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빛을 읽으셨을 것이다. (솔직히 나라도 떨어뜨렸겠다.)


수시에서 낙방 후에 나는 플랜 B를 세웠다.


1) 일단 사범대가 있는 대학 다른 과에 입학한다.

2) 사범대 국어교육과 혹은 영어교육과로 전과를 한다.

3) 임용고시를 잘 본다.

4) 교사가 된다.


플랜 B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내가 수시로 낙방한 그 사범대가 있는 대학으로 입학했다. 1번 통과. 그리고 2번 실패. 전과를 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했는데 1학년 1학기에는 고삐가 풀려 있었다. 평점 2.0점이었던가. 여름방학을 앞두고 굳게 결심했다. 결심한 장소도 기억한다. 학교 운동장 구령대였다. 한 친구와 함께 절치부심했다. 2학기에는 반드시, 기필코. 2학기가 끝나고 평점이 나왔다. 2.3점이었던가. 풀린 고삐가 아직 안 묶여 있었다. 전과는 물 건너갔구나. 나는 플랜 B를 버렸다. 아니지. 자동 폐기됐다. 이때부터 내 꿈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장래희망 칸에 줄기차게 썼던 '교사'라는 꿈은 그렇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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