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학교 2학년이 시작됐다. 나는 침울하고 우울한 2학년이었다. 1학년 때는 고삐가 풀려서 이리저리 날뛰고 다녔는데 2학년 때는 누가 고삐를 묶지 않았는데도 풀밭 한가운데 얌전히 널부러진(이 표현이 제격이다) 염소 같았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려고 했지만. 한 번은 가슴속 구석구석 켜켜이 쌓여 있던 것들이 눈물로 터져 나왔다. 내 선택이었고 내 결정이었다. 억울하지는 않았지만 서러웠다. 그래서 서럽게 울었다. 소리 내어.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저리다.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그 실패를 피해 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실패였다.
대학 2년 차 적응은 쉽지 않았다. 성적으로 잘려서 들어간 과이니 애착이 생길 리가. 애착이 없으니 성적이 잘 나올 수도 없었고. 내 기억으로 2학년 1학기 평점도 2점대였다. 2.8점 정도나 나왔으려나. 나는 결국 2학년 2학기 절반 이상을 보내다가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군대 문제도 있었으니. 안 되겠다. 일단 멈추자.
당시 나는 이미 교사라는 꿈을 접어놓고 있었다. 어쩌면 그만큼 진지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생각은 너무나 단순했다.
사범대 입학해서 임용고시를 잘 보고 교사가 된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나는 어떤 교사가 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방법만 알았을 뿐. 무슨 이유로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지 몰랐고, 그저 여러 장래희망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진로들을 생각하지. 뿌리가 깊지 않으니 바람에 쉽게 넘어가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을 먹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때였다. 20대 초반. 무엇을 한다고 마음을 먹어도 해낼 것 같은 나이. 하지만 그런 자신의 가능성을 보는 눈은 없는 때.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것 같은 때. 나는 그 벽 너머를 못 보고 있었고 벽을 무너뜨릴 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벽은 내가 만들었다고 인정할 용기도 없었고.
휴학은 했지만 학교에서 그대로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선배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진로 상담을 청하면서 상담비 명목으로 식사든 차든 내가 샀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회복지는 어떨까. 여행사 쪽 일은 또 어떨까. 내 흥미를 따라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때였다.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떠오르지는 않지만 앞길이 어두운 나로서는 바로 발 앞을 비춰주는 등불과 같은 순간들이었다. 그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됐으니까. 위안이 됐으니까. 하지만 갈피를 잡기는 어려웠다. 조바심에 쫓겼고 막연함에 눌렸다. 2학기가 끝나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복학을 하면 2학년 2학기부터 시작이구나. 나는 그 당시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도망쳐 숨을 곳이 필요했다. 한숨을 돌릴 그런 곳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