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운전 중인데 뒤에 앉아 있던 딸이 말했다.
아빠, 나중에 집 살 때 주택 살 거예요!
이 말을 듣자마자 내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주택 좋지.
좋은 게 뭔지 아는구나. 돈이 꽤 들 텐데.
그 돈을 모으려면 저축으로는 안 될 것이고. 사업을 해야 하나.
주택을 산다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딸의 재무설계를 시작했다. 그렇게 딸의 미래 재정에 대해 생각한 지 10초 정도 지났을까. 딸이 이어서 던진 말로 설계에 제동이 걸렸다.
주택 사서 마당에 토마토, 고추 심을 거예요! 사과나무랑 아카시아 나무도!
아. 이런. 내가 무슨 짓을. 딸은 텃밭을 꾸리고 싶었던 거다. 나는 근사한 전원주택을 떠올린 것이고. 딸은 작은 농사(사과 농사 규모는 아직 모르겠지)를 떠올리며 말했는데 거기 내 생각을 입혀버렸다. 그것도 어른으로서의 생각. 세상에 많이 절여진 어른으로서의 소망.
가만히 떠올려 보니 나는 어릴 때 내가 싫어했던 어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집이 얼마고, 차가 얼마고,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 살고, 비교하고, 내보이고. 이런 이야기보다는 꿈에 대해, 원하는 바에 대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묻고 답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물론 지금 내가 그런 현실적인 것들을 굳이 묻고 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로만 안 한다고 그런 어른이 안 됐다고 할 수 있을까.
돈 걱정 없는 사람 얘기를 들으면 부럽고 단독주택에서 문 열고 나오는 이를 보면 부럽다.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고 월급날 통장을 스쳐가는 돈에 한숨을 쉰다. 꿈도 원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떠올리지를 못한다. 내가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꿈도 안 보이기 마련.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주택을 사고 싶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보는 만큼의 생각을 한 것이다. 말로만 안 꺼낼 뿐 생각은 결국 그쪽이 아닌가.
다음부터는 먼저 물어봐야지.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물어봐야지. 어른 된 지는 오래됐지만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꿈도 원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잊고 있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