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쏘시개

by 서린

조선 조정에서 민심을 달래고자 안핵사를 보냈다. 도망친 탐관은 체포되었다. 들불로 일어났던 이들은 흩어져 자기네로 돌아갔다. 안핵사는 사건에 대해 묻고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책임을 백성들에게 물었다.


동비(東匪)들을 잡아들여라.

주동자를 색출하여 역적죄를 묻겠다.


살아 보자고 일어선 이들을 다시 꿇어앉혔다. 죄가 없던 자들이 죄인이 되어 끌려갔다. 고혈을 빨던 자가 쫓겨서 나가니 또 다른 자가 그 자리에 틀어 앉으려 했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불길이 차분해질 듯하였으나 안핵사 스스로 쏘시개가 되어 이리 들쑤시고 저리 휘저었다. 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1894년 4월 말. 호남평야를 가르는 동진강 옆에 작은 구릉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곤장에 아비를 잃은 자가 선봉에 섰다. 농사로 분주해야 할 계절. 심어봐야 절망이었고 거둬봐야 빈손이었다. 그 손으로 스스로들을 살리자고 모였다. 그 손들을 모아 판을 뒤집자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그들은 포고문으로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인륜을 말했고 신하의 역할을 말했다. 나랏일은 뒷전이고 백성을 핍박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자들의 책임을 물었다. 삶이 무너졌고 기댈 곳이 없다 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데 그 뿌리가 흔들리니 나라 또한 위태롭다 했다. 임금의 땅에서 임금이 준 옷을 입었으니 이 위태로움을 두고 볼 수 없다 했다. 죽음으로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싶다 했다.


불길은 거셌다. 잘못된 것들은 모두 태우고 바로잡을 기세로 전주를 향했다. 불은 호남에 있었으나 그 열은 한양까지 미쳤고 가진 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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