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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방울 Feb 18. 2023

도서관 가는 날

우당탕탕

우리 가족은 매주 도서관에 간다. 집에 책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매주 새로운 책을 고르고,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러 간다. 냉장고에 식재료가 있고, 집밥을 주로 해 먹지만 가끔씩은 외식을 하는듯한 느낌과 유사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서관은 첫째 아이인 초등학생 딸이 보호자를 대동해서 가는 장소이고, 합류하는 인원은 매번 다르다. 부녀만 오붓하게 둘이 갈 때도 있고, 둘째 아이도 같이 갈 때도 있으며 막내까지 합류할 경우 보호자로서 수용 능력 초과로 배우자는 어서 나에게도 나갈 준비를 하라는 눈치를 준다.


지난주는 차로 10분 걸리는 어린이 도서관에 가족 5명 모두 함께 가기로 한 날이었다. 반납해야 할 책들을 거실 한쪽에 가지런히 모아놓고 우리는 각자 준비모드에 돌입했다. 집 앞에만 나가도 세미정장 스타일로 입는 배우자는 빠르게 샴푸와 면도를 하며 아이들에게 집안을 정리하라는 잔소리가 내내 이어졌다. 나 역시 이틀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예의로 화장은 생략해도 샴푸는 해야 했다. 이후 머리를 말리면서 막내의 외출복을 꺼내 대기시켜 놓고 주방 정리를 마무리했다. 9세와 7세 어린이는 스스로 옷을 챙겨 입는 정도의 준비는 가능하지만 무슨 옷을 입을지에 대해 상의하고, 입고 싶은 옷이 아직 빨래가 되지 않아 입을 수 없다는 하소연을 듣느라 안방의 인구밀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현관 앞까지 도달했고, 신발을 신으며 마스크를 쓰고 덜 말린 머리를 풀어헤친 채 주차장으로 향했다.


모든 인원이 안전벨트를 하고, 출발 전 잠깐이지만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감상할 음악을 선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드디어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와 빛을 보려는 순간 무언가 가장 중요한 걸 빠뜨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반납하려고 가지런히 모아둔 책들을 챙겨 오지 않은 채 우리만 신나게 준비해서 빠져나온 것이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떠오른 게 아닌 이렇게나 일찍 발견해 낸 우리를 칭찬하며 다시 차를 돌려 집에 다녀왔다. 반납할 책을 챙겨 차로 10분 걸리는 도서관에 우리는 준비부터 도착까지 2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셋이 된 이후부터는 정말 수시로 다양한 것들을 잊어버리는데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 안 잃어버렸으니 다행이지 뭐'



초등 저학년인 딸아이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방법은 알파세대답게 검색을 이용한다. 도서관 출입문과 가까이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본인이 좋아하는 키워드를 넣어서 검색해 본다. 주로 '공주'와 '공주님' 같은 것들이다. 검색 끝에 원하는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닌 취향에 가까운 서가를 찾아서 향한다. 서가 앞에 선 아이는 꽂힌 제목들을 빠르게 훑고 나서야 대출하고 싶은 책을 척척 뽑아낸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책은 이런 도서들이다. <멋쟁이 낸시는 발레복이 너무 많아>, <멋쟁이 낸시의 학교생활 100일>, <멋쟁이 낸시는 실수투성이 미용사>, <색깔을 훔치는 마녀>, <우리는 단짝 친구> 등.


미취학 어린이인 아들이 책을 고르는 방식은 또 다르다. 아이의 키만 한 책장들 사이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저 산책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는 갑자기 어딘가 멈춰서 타로카드 뽑듯이 한 권을 쏙 빼낸다. 책의 이름은 <두근두근 집 보기 대작전>.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아이가 고른 책의 등장인물은 주로 동물이며 분위기는 주로 우당탕탕.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막내는 둥지방 안에서 주로 읽어주는 책을 보고 듣는다. 크기는 주로 어른 손바닥만 하고, 한글책 영어책 가리지 않지만 분위기는 언니의 취향과 고스란히 닮아있다.



집에서 육아를 하며 가끔 행방불명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가끔이 아니고 훨씬 빈번하다고 고백한다. 그럴 때마다 이 책 저 책에 빠져들며 아이들과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술을 체득해 활용한다.


마음 같아서는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현실은 한두 가지 제약이 가로막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향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이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듯하다.



+덧붙임

휴대폰 어딘가에 도서관 사진이 있을까 싶어 사진 앱에서 '도서관'이라고 검색을 했더니 18개월 전에 찍어둔 이사 직후의 거실 책장 모습이 나왔다. 책이 많이 있는 곳을 도서관이라고 인식하는 듯했다. 보기엔 좋아 보이는 책장의 지금 모습은 전혀 다르다. 문도 자주 빠져서 방향을 바꿔 단적도 여러 번이고, 서랍장으로 보이는 하얀 곳은 이미 아이들의 흔적 남기기 대환장파티로 하얀색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선반도 무너져서 시한부선고를 받은 것 마냥 안쓰럽다. 디자인이 중한게 아닌 튼튼하고 무난한 가구를 샀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나와 아이들에게 언제든 세계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책장이 조금만 더 버텨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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