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때다 싶은 때가 와요.

by 쥐방울

초등 어린이의 흔들리는 유치를 발치하기 위해 치과에 갔다가 괜한 어린이 스케일링 실패기만 들고 돌아왔다. 결국 화가 나서 발치하지 못한 유치는 다음날 아이가 혓바닥으로 밀어내는 힘에 못 이겨 고꾸라졌고 마침내 작별인사를 했다. 사과를 사러 간다고 데려가놓고, 갑자기 바겐세일하는 배를 사야 한다고 하자 아이는 배는 먹기 싫다고 해서 화가 난 김에 사과도 안 사고 온 날이었다.

* 이날의 교훈 : 바겐세일 해도 충동소비 금지




발치는 얼떨결에 해결되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스케일링에 대해서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무수히 여러 번 편안한 마음으로 드나들어야 할 치과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었다.


사실 아이가 치과에서 가감 없이 떨리는 마음을 드러낸 것은 나에 비하면 약소하고 어쩌면 어린이이기에 당연해 보였다. 30년 넘게 치과에서 검진을 받거나 간단한 스케일링만 진행하러 내원한다는 생각만 해도 근육이 경직되고, 입맛이 사라질 만큼 공포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는 데는 어린 시절의 훈련된 경험이 축적된 결과였다. 초등학생 때 학교 구강검진에서 처음 충치를 발견했고, 치과에 가서 상담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수순을 밟았다.


소독약 나는 듯한 냄새, 입안을 온통 드릴로 뚫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소리, 눈은 가려져있어 지속되는 불안감을 베드에서 혼자 어린이는 감당해내야 한다. 당일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의 마음과는 달리 준비는 부모의 지갑 사정이면 충분했다. 상담 역시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가 된 상황이었으며, 치료를 마치고 나온 어린이에게 돌아온 것은 안 써도 될 돈을 많이 쓰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양치 좀 잘하라는 조언뿐이었다. 양치를 앞으로는 조금 더 꼼꼼히 해보자는 생각을 어린이는 못한다고 떠올렸을까.


우리 몸 중 어느 한 곳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치아만큼은 평생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떠올랐다. 특히 약한 치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하루정도 게으르고 싶어서 양치를 건너뛴다면 그 파장은 어디까지일지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튼튼한 치아를 가지고 태어난 분들은 정말 복 받으신 분들이고, 인간이 진화를 한다면 치아관리 면에서도 진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도 양치와 치실이 귀찮은 건 사실이니 어린이의 귀찮은 마음은 백 번 천 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결국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에 나와 유사한 기질로 태어난 아이를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내 어머니가 나에게 행했던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가 학습해보지 못한 방법을 아이에게 시도해 보았다.


진료받은 당일 아이는 스케일링을 할 수 없겠다고 말했고, 다음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오겠다는 말도 없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기다린다고 해서 아이가 스스로 간다는 날이 올까 라는 생각이 1%는 마음 한구석에 존재했다. 그렇게 혼자서 의심 한 방울을 떨어뜨린 믿음과 신뢰의 눈빛을 장착하고, 집에서는 아이에게 단단한 칫솔과 부드러운 칫솔을 번갈아 써보며 치석이 생긴 부분을 최대한 양치질해 보자고 했다.


그러기를 2주일이 지났을까 아이는 갑작스레 수줍은 모습으로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해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정말 큰 결심을 한 아이에게 놀란 토끼눈을 한채 고마움을 표현했고, 일찍 하교하는 날 오후에 약속대로 치과에 향했다. 아이는 이전에 내원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고, 살짝 긴장은 했지만 괜찮다는 말에 그 자세로 잘 마쳐주었다. 그렇게 20일 만에 다시 방문한 치과에서 아래 영구치 4개를 스케일링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미만이었고 비용은 5천 원이었다.


아이가 느끼기에는 3분 정도 걸린 것 같다고 했다. 혼자서만 아이를 그저 기다린다고 느끼는 동안 아이도 사실 잊지 않고 가끔씩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소리는 왜 그런 건지, 입안에 튜브는 왜 넣는 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에 관해서였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바꾼 것인지 물어본 질문에는 아주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이때가 싶은 때가 와요!


낯설고 두려운 것들에 대해서 떠올려보고 궁금증이 해소된 어린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도 엄마가 되어서 또 배웠다. 그래서 인생선배같이 느껴진 아이에게 이번엔 역으로 조언을 구했다.

"엄마는 출산을 한번 경험했어도 두 번째, 세 번째 출산이 두렵더라. 치과에 대해서도 다 알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떻게 하지?"

"그건 용기가 없는 거 같은데?"

들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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