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키운 어린이

by 쥐방울

초등어린이는 음식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의 모든 시리즈를 애정한다. <오무라이스 잼잼>의 작가 조경규 님의 딸 이름은 조은영인데 은영이라는 이름의 한자까지 알고 있는 정도이다. 잠자리에서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한자이름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했다. 갑자기 물어보니 생각이 안 나서 내일 아침까지 꼭 다시 찾아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몇 달 전에는 <오무라이스 잼잼>에 등장한 은영이가 9살(초등2학년) 일 때 알약 먹기를 시도했던 것을 기억하고 본인과 같은 나이라 도전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안 그래도 감기약을 처방받으면 시럽양이 몸무게와 비례하다 보니 점점 많아지는 약의 용량에 난감해져 있을 때였다. 은영이의 첫 알약시도는 실패했지만 본인은 은영이 덕분에 상세한 방법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어느 날 저녁 아이는 모기에 물린 듯 귀가 부어있었고 가려워해서 집에 있던 상비약 연고를 발라주었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으나 하교하는 아이의 얼굴은 괴로움이 가득했다. 모기에 물린 것이 아니고 원인불명의 두드러기가 온몸에 퍼져서 가려움증에 힘들어했고, 우리는 바로 피부과로 출발했다.


환자의 아픔에 공감해 주고, 원인을 함께 추측해 가던 의사는 진료가 끝나기 전 아이가 알약을 먹을 수 있는지 물으셨다. 마침내 우리는 이때다 싶었다. 알약으로 복용해 본 적은 없지만 크기가 작은 알약이라면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강력히 말씀드렸고, 의견을 반영해서 처방해 주셨다.


하루에 두 번 복용하라는 안내가 있었지만 당장의 가려움증 완화를 위해 당일에만 오후와 취침 전 시간으로 제안해 주셔서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아이는 알약 먹기에 도전했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받아 한 모금 머금은 채 알약을 입안에 넣고 고개는 한껏 뒤로 젖혀 물을 삼키듯 꿀꺽! 꿀꺽! 꿀꺽! 어린이의 입안에는 물도 알약도 사라졌고 해냈다는 미소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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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진짜 알약을 먹었나 봐!"

그때 약국 직원분의 한마디가 아이를 더 으쓱하게 만들었다.


아이고 다 키우셨네!


갓난아기 시절에는 아이가 대소변만 가리면 다 키운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세 아이들 모두 24개월이 되자마자 필사적으로 기저귀를 떼고야 말았다. 그리고 막내까지 분유와 기저귀를 더 이상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왔을 때 아기에서 어린이를 만들어놓은 느낌에 레벨 업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초등2학년 진짜 어린이는 이제 알약까지 스스로 먹게 되어 다 큰 어린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9살에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스케일링과 알약 시도한 것 두 가지를 스스로 꼽을 정도였다. 엄마인 나는 청소년 때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스케일링이고, 중학생이 되어도 알약을 넘기기 힘들어했기에 더욱 놀라웠다.




지금의 30대인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한 번도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 어른들은 우리 부모님에게 이런 말들을 건네셨다. "아이고 자식 잘 키우셔서 좋으시겠어요." 내가 잘 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엄마아빠 좋으라고 일부러 바른 행동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그 말을 들은 아빠는 그저 뿌듯해하고 흐뭇해하는 표정만 지으셨다.


역으로 이제 엄마가 되어 아이에 대한 칭찬을 함께 듣게 될 때 물론 나도 감사하지만 더 기뻐하고 뿌듯해하는 사람은 어린이다. 인사 잘하고 예쁜 말을 한다고 칭찬받은 어린이는 계속 꾸준히 그 모습으로 행동하고, 알약 먹기에 성공하여 다 키웠다는 말을 들은 어린이는 동생 앞에서 꿀꺽! 아빠 앞에서 꿀꺽! 선보이며 스스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나간다.


다 키운 어린이는 스스로 성장하는 어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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