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방 안의 코끼리'를 마주하는 용기
"요즘 그 친구는 그냥 조용하더라고요."
"성격이 원래 그래요."
"회의할 때도 딱히 의견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잠깐, 정말 그럴까요?
회의실에서 유독 조용하던 팀원이 밖에서 동료들과는 활기차게 이야기하는 모습 목격한 적 없으신가요?
그런 팀원을 보면서 리더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를 생각합니다.
'원래 성격이 그렇겠지'
혹은 '별다른 의견이 없나 보다'.
사실 한국의 회의문화에는 깊이 뿌리 박힌 문제가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군대에 이르기까지 선, 후배 문화가 스며들어가 있는 사회를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들 대부분은 위계질서가 잘못됐다고 여기게 된다고 하지만, 실제 직장에서는 여전히 그 문화가 지속되고 있죠.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위계 구조가 갖는 특성상 권위와 강요, 불공정과 무시가 잠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곧 계층별 소통의 동맥경화를 초래하고 업무 유연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하죠.
더 심각한 것은 조직문화가 수직적이면 상급자는 하급자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의견은 애초에 차단되어 버리는 거죠.
회의에서의 침묵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구조와 감정, 그리고 조직 문화가 만들어낸 복잡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는 순간, 그들은 말할 필요를 못 느끼거나, 말해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직심리학자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ndson)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강조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 구성원들이 실수나 무지,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에드먼슨의 연구에 따르면,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팀은 더 많은 실험과 피드백, 협업을 이끌어냅니다. 반대로 안전감이 없으면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하게 되죠.
그럴 때 회의는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방 안의 코끼리'를 외면하며 불편함을 피하는 공간이 됩니다.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그 무언가 말이죠.
그 침묵을 그냥 넘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신뢰는 점점 약해집니다. 진짜 속마음을 나누지 못하니까요. 답답해진 리더는 혼자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표면적인 이야기만 오가게 되며, 결국 조직은 '소리 없는 무기력'으로 흘러갑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회의문화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조직을 떠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2명 중 1명은 이직이나 직무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MZ세대는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거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과감히 이직을 선택합니다. 그들에게는 '솔직한 소통'과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전통적인 한국의 회의문화는 이런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윗사람에게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고, 형식적인 회의가 반복되며, 진짜 중요한 결정은 회의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죠.
이런 회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진짜 의견은 나오지 않고, 형식적인 보고만 이어지는 회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참석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척하는 회의. 이런 회의가 반복되면서 팀원들은 점점 더 침묵하게 됩니다.
'어차피 내 말은 반영되지 않을 텐데' 하는 체념이 생기는 거죠.
그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내야 할 사람은 리더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왜 말을 안 하지?"라는 추측 대신 "무슨 신호가 있었을까?"라고 접근해 보세요. 말투의 변화, 회의 참여 태도, 메신저에서의 반응 등 작은 단서들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조직심리학자 크리스 아게리스(Chris Argeris)는 이런 침묵을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s'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성격 탓이 아니라, 말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려는 방어기제라는 겁니다. 침묵은 개인의 성격 탓이 아니라 환경의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한번 되돌아보세요. 회의에서 누가 주로 말하나요? 회의의 목적이 명확한가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침묵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회의 구조가 만든 것일 수 있습니다. 발언하기 어려운 환경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철학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가 말했듯이, 진정한 의사소통은 참여 가능성과 발언의 평등에서 비롯됩니다. 회의는 바로 이 철학을 실천하는 현장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왜 이렇게 조용해요?"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방어적이 됩니다.
"왜"라는 질문 대신 "어떤"이나 "무엇"의 표현을 사용해
구체적으로 상대의 의견을 물어주세요.
"이 주제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의견이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회의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요?
이것은 추궁이 아니라 연결의 언어입니다. 상대방을 탓하지 않고, 상황을 함께 바라보자는 생각의 초대장이죠.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이런 연결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리더가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려는 모습을 보일 때 팀원들은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모두가 한 번씩 의견을 나눠보는 걸 목표로 해요."
참여의 기준을 미리 설계하고 공유하세요. 소위 말하는 '그라운드 룰'이죠. 예상치 못한 발언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발언뿐 아니라 침묵의 시간도 기록해 보세요. 누가 언제 말하지 않았는지, 어떤 주제에서 조용해졌는지 파악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을 미리 준비해 두세요.
"이 안에 불편한 점은 없을까요?"
"이 방향이 어떤 분에겐 부담일 수도 있을까요?"
"오늘 회의에서 내 진행에 대해 피드백 줄 수 있어요?"
"혹시 내가 놓친 지점이 있다면 말해줄 수 있을까요?"
팀장이 팀원에게 피드백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기꺼이 피드백을 수용할 때, 진짜 신뢰가 생겨나고, '방안의 코끼리'를 함께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회의문화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관습과 인식을 바꿔야 하니까요. 하지만 지금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인재를 잃게 될 것입니다.
직장 내 기성세대와 MZ세대 간 갈등 심화와 이로 인한 이직률 증가는 이미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들은 복지제도나 근무환경, 소통 방식이 생각과 다르면 과감히 퇴사를 고민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의견이 경청받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윗사람이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당신의 팀에서는 모든 사람이 말해도 괜찮다고 느끼고 있나요? 진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회의를 하고 있나요? 오늘 한번 물어보면 어떨까요?
"침묵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들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리더십의 시작입니다."
다음 회차에도 낀 세대 리더들의 성장과 연결을 위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