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의 기초 공사: Working Identity

정체성은 내가 계속 재구성하며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커리어 전환, 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할까?


30-40시기는 커리어에서 변화가 가장 많은 시기입니다.

팀원이었다가 리더의 역할을 맡기도 하고, 이직을 해서 새로운 조직 문화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또 회사를 다니다가 저처럼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 경우도 있지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예전에 익숙한 일보다 퍼포먼스가 낮아질 수밖에 없죠.


헌데, 어떤 사람은 커리어 전환에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하는 이유가 뭘까요?


실력? 준비? 인맥?


사회 심리학자 대프나 오이서먼(Daphna Oyserman)은 자기 개념과 사회정체성이 그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역할이라도 "나는 ~한 사람이다(I am the kind of person who …)"라는 자기 정체성이 있다면, 피로감과 어려움도 "힘들지만 중요하네, 더 해야지(no pain, no gain)"라고 해석하며 그 일을 지속합니다. 반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끼면 "역시 이건 내 일이 아니야"라며 쉽게 포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변화와 성장을 계획할 때 '무엇을 이루겠다'는 성취에 초점을 맞추지만, 진짜 핵심은 '어떤 버전의 나로 살 것인가(원하는 자기정체성)'를 분명히 하고, 그 정체성과 연결된 선택·습관을 일상 속에서 계속 강화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자기확신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이나 환경의 변화에도 꺾이지 않는 근본적인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또 질문이 올라오실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진짜 정체성을 발견할 것인가?
대체 '참다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1. Working Identity: 정체성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것


정체성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해 온 런던비즈니스 스쿨의 허미니아 아이바라(Herminia Ibarra) 교수는 그녀의 책 『Working Identity』에서 명확하게 말합니다.


'세상에 진정한 나' 같은 건 없으니, 가능한 나를 테스트하면서 만들어가라!


성인은 '행동하면서 배우는 존재(Learning by doing)'이며, 내 안에는 단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한 자아(Possible Selves)가 있기 때문입니다.

스크린샷 2026-01-14 161128.png 책의 내용을 노트북 LM이 정리한 슬라이드입니다.


새로운 지식은 머릿속이 아니라 경험과 타인과의 상호 작용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완벽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좌절감에 빠지게 되겠죠. 그 전에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경험하면서, 내가 이 일에 대한 어떤 감정을 갖는지 테스트해봐야 합니다.


책의 타이틀인 '정체성(Identity)' 앞에 쓰인 단어 'Working'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직업적으로 '나'를 누구라고 정의하는지를 말합니다. '나는 의사다' '나는 마케터다'와 같이 자기개념과 사회적 정체성을 만드는 나의 직업적 자아입니다.

둘째, 동사로서 수정 중인 '초안'의 의미입니다. 정체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죠.


정체성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

허미니아 교수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에는 3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1) 우리가 하는 일(What We Do)
우리의 정체성은 생각이 아니라 실제 몸으로 부딪히며 수행하는 일들에 의해 형성됩니다. 머릿속 계획이 아니라, 실제로 손과 발을 움직여 경험하는 활동들이 나를 만듭니다.

2) 우리가 맺는 관계(The Company We Keep)
우리가 누구와 일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는지, 어떤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갖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의합니다.

3)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The Stories We Tell)
우리의 삶과 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Sense Making)하는지가 정체성 확립에 핵심이 됩니다.


2. 새로운 정체성 만들기: 3가지 실천 방법

그렇다면 새로운 일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1. 실험하기: 가능한 자아들을 테스트하라

'진짜 나'를 찾으려 하지 마세요. 대신 '가능한 자아들'—되고 싶은 모습, 될 수도 있는 모습, 혹은 되기를 두려워하는 모습 전체를 열어두고 탐색해 보는 겁니다.

실제 경험을 해 보면, 그 일을 할 때의 느낌, 적성, 즐거움을 얻음으로써 막연했던 '가능한 자아'가 구체적인 현실로 체험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이 구체화됩니다.

지금 조직에서 리더가 아니지만 리더가 되는 것이 두렵다면, 회사 외부의 커뮤니티에서 리더 경험을 해보세요. 직무 변경을 희망한다면, 타부서와의 협업 프로젝트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죠.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실험을 통해 피드백을 얻고, 수정해가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나를 찾아가 보는 겁니다.


2. 관계 바꾸기: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우리의 정체성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가이드가 되어주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함께 학습하고 연습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해요. 외부 컨퍼런스나 조직 내 멘토, 독서 모임 등도 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3. 의미 부여(Making Sense)와 이야기 다시 쓰기

정체성 재구성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에 불연속성을 통합하는 과정으로 마무리됩니다.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들을 해석하고, 흩어져 있던 경험들을 엮어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고, 이 이야기를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될 때 정체성의 재구성은 완성 단계에 접어듭니다. 새로운 자아를 내면화하는 핵심적인 과정이지요.


KakaoTalk_20260114_160416595.jpg 지난 영국 여행에서 사 온 허르미나 이바라 교수의 <Working Identity> . 이 책을 사온 저를 칭찬합니다 :)

3. 정체성 사이의 머무름: 모순을 견디는 시간

'정체성 사이의 머무름(Lingering between Identities)'은 커리어 전환 과정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변화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단계이기도 합니다.

저자 허미니아 아이바라는 이 시기를 낡은 자아는 떠났지만 새로운 자아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심리적 '중립 지대(Neutral Zone)'라고 정의합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모순을 살아내는 것(Living the contradictions)"입니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두 세계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태는 마치 "허리케인 속에 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중립 지대를 5년간 거쳐왔습니다. 18년간의 마케터로서의 정체성과 강사/코치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요. 회사를 나오기 전부터 독서모임과 여성리더 모임에서 퍼실리테이션과 코칭을 시작했고, 새로운 학습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갔으며, 영감을 주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자서전도 썼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이바라 교수가 추천한 플로우를 그대로 따르고 있더군요. 실험(사이드 프로젝트), 관계 바꾸기(새로운 커뮤니티), 이야기 다시 쓰기(자서전). 지금은 과거의 정체성보다 강사/코치로서의 정체성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아직도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정체성 형성은 한 번의 전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활동이 더 쌓이고 경험이 반복되면서 계속 강화될 수 밖에 없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이 조직의 리더라면, 이 통찰은 더욱 중요합니다. 팀원이 새로운 역할로 전환할 때, 또는 여러분 자신이 더 높은 리더십 위치로 올라갈 때, 이 '중립 지대'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관리자에서 임원으로, 각 단계마다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순과 긴장을 견뎌내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내면을 단련시키고, 단순한 직책 변경을 넘어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가 재정립되는 '깊은 변화(Deep Change)'를 가능하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정체성 사이의 머무름'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날개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변태(Metamorphosis)의 시간입니다.


스크린샷 2026-01-14 161346.png 저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도 이 3단계 과정을 반복하면서 더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에는 왜 지름길 같은게 없을까요? :)


4.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

새로운 변화 앞에서,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반은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자기 개념과 사회적 정체성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장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뭘까요?


1단계: 현재 정체성 명확히 하기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업무 정체성을 적어봅니다.
나는 ___________을 통해 ___________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위해 지난주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렇게 했는지 적어봅니다.

언제 가장 나의 정체성이 잘 드러났는지도 떠올려봅니다.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살펴봅니다.


2단계: 가능한 자아들 탐색하기

내가 될 수 있는, 되고 싶은 미래의 모습들을 적어봅니다.

3년 후 나는 ___________을 통해 ___________을 하는 사람이다.

5년 후 나는 ___________을 통해 ___________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두려워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은 ___________이다.


최소 3-5가지 가능한 자아를 적어보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가능성만 열어두면 됩니다.


3단계: 실험 계획 세우기

각 가능한 자아를 위해 지금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실험을 적어봅니다.

[가능한 자아 1]을 테스트하기 위해: ___________ 프로젝트/활동을 해본다.

[가능한 자아 2]를 테스트하기 위해: ___________ 역할을 맡아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관계/커뮤니티: ___________

이를 위해 필요한 학습/경험: ___________


4단계: 나의 이야기 쓰기

그렇게 나의 정체성을 강화해 가는 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될까요?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전환점이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지금 나는 어떤 여정 중에 있나요?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위의 과정들은 혼자보다는 코치와 함께 하거나 그룹으로 할 때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리더의 아이덴티티 발견하기'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5. 마치며: 워킹 아이덴티티는 끊임없이 그려지는 초상화

여러분은 현재 새로운 정체성 앞에서, 자신감을 얻기 위해 무얼 하고 계신가요?

아이바라 교수의 통찰을 빌리자면, 당신이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능력 부족'의 신호가 아니라, 단지 '경험 데이터 부족'의 신호일 뿐입니다.

자신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저질러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니까요.


워킹 아이덴티티는 완성된 조각상이 아닙니다. 매일의 붓질(활동)과 물감(관계), 그리고 화가의 의도(이야기)에 따라 끊임없이 덧칠해지고 수정되어 가는 초상화와 같습니다.


반고흐가 자신의 초상화를 평생 40여 점이나 그렸듯이, 우리의 정체성도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단계마다 다시 그려지고 깊어집니다.


당신의 초상화는 지금 어떤 색으로 칠해지고 있나요?


<아이덴티티와 인상파 화가에 대한 다른 생각>

https://brunch.co.kr/@moutains/32

https://brunch.co.kr/@moutains/18


<리더의 아이덴티티 발견 워크숍 관련 포스팅>

https://blog.naver.com/why-connect/22405811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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