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
‘여행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일’
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베를린에 '우리 집'이 있다는 사실이 참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home sweet home’을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일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굉장히 축복이라는 사실을, 1년에도 네 다섯번씩 이사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우리집은 베를린의 중심과 그리 멀지 않은 프렌츠라우어베르크 Prenzlauerberg에 위치해 있었다. 베를린은 구역마다 그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데 예쁜 카페와 편집숍이 많으면서도 안전한 프렌츠라우어베르크는 우리의 취향에 딱 맞는 곳이었다. 거리마다 소소한 카페들이 넘쳐났고 평소에는 평화롭다가도 마켓이 들어서는 주말엔 활기가 돌았다.
카페에 앉아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유로운 모습들. 베를린은 전체가 생활도시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살기 좋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취향 차이는 있지만 어느 동네든 비슷한 모습과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이 도시가 큰 격차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베를린의 건물은 크게 오래된 것(Alte Bau)과 새로 지은 것(Neue Bau)으로 나뉘는데 우리 집은 오래된 집에 속했다. Alte Bau는 천장이 높고 창문에 방한이 잘 되지 않아 추운게 일반적이다. 우리 집은 변기만 있던 화장실에 한명이 겨우 사용할 수 있는 샤워부스를 개조해 넣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오래된 집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나처럼 집 전체를 구하려면 한인커뮤니티사이트 보다는 독일 내에서 사용하는 부동산검색사이트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돈보다 문서를 더 중요시 여기는 독일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없는, 그래서 일정한 수입을 증명할 문서가 없는 한국인이 방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최근 3개월간 수입이 적힌 독일계좌 내역과 schufa라고 불리는 신용조사기관의, 말하자면 신용등급이 필요한데 이 역시 독일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된 외국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보통은 호스텔이나 한인민박에 머물면서 ‘베를린리포트’라는 한인커뮤니티사이트에서 WG(하우스쉐어)나 Zwischen(일정기간만 렌탈)을 구한다. 그렇게 룸쉐어 생활을 하다가 일자리를 얻거나 돈을 모아 독채나 원룸을 구하는 수순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간혹 우리집 주인처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거나 방세가 그리 비싸지 않은 Alte Bau(오래된 집)의 경우 잔고 증명 정도로 계약이 가능한 일도 종종 있다.
독일 사이트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단어가 있다. 방세를 의미하는 Miete와 보증금을 의미하는 Kaution이 그것이다. Miete에는 Warmmiete와 Kaltmiete 두 가지가 있는데 Warmmiete는 전기나 가스, 수도 등의 공과금이 포함된 금액이고 Kaltmiete는 공과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방 렌탈 비용이다. Warmmiete 안에 포함되는 항목은 집주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요금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 집은 인터넷을 따로 설치해야 했고, 공과금이 50유로 이상 나올 경우 초과되는 금액은 따로 지불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독일의 보증금은 우리나라에 비해 꽤 합리적인 편이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서 많게는 세달 정도의 월세가 보증금으로 책정된다. 계약이 만료되거나 다른 집을 구해 이사를 나가야할 때 큰 문제가 없다면 돌려받을 수 있다.
외국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현지에 도와줄 친구가 없다면 초반에는 많은 고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그 수많은 문서를 준비하는 과정과 친절하지만 철저한 베를린 사람들을 겪었다면 베를린 생활의 5할은 이미 경험해본 셈이며 이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거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