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화 Jul 21. 2018

베를린 적응기 -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möchten 원하다


베를린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는 möchten(원하다) 이었다. 마법 같은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길 원하고, 성공하길 원하고, 사랑하길 원하고. 원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질 것 같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단한 인터넷 설치부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전화 한통으로,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가입을 해도 확인전화와 함께 다음날 바로 설치기사를 보내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베를린은 설치기사가 오기까지 4주의 시간이 걸렸다. 만일 약속한 날짜에 설치기사를 만나지 못하면 다시 약속(Termin)을 잡은 후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네 번의 Termin 끝에 인터넷을 설치할 수 있었다.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고, 인터넷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일정들도 당연히 뒤로 미뤄졌다.


인터넷 설치 외에도 병원, 거주자 등록, 계좌개설 등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Termin을 잡아야만 진행이 되었고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 몇 달 간은 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얻었던 한국에서와는 다른 생활방식에 적응해야만 했다. 당연하게 받았던 서비스들, 전화 한통이면 달려오시던 기사님들, 바로 업무처리가 가능했던 은행과 주민 센터. 세상에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 온 것들에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전제되어 있었음을.



적응해야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날씨 앞에서 자주 무너졌다. 특히 건조한 날씨에 약한 나는 자다가도 목이 바싹바싹 말라 물을 찾았다. 한번 잠에서 깨고 나면 꿈속에서도 갈증을 느꼈다. 강으로 뛰어 들어가던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보였다.. H는 도무지 잘 챙겨먹지 않는 내가 이렇게라도 물을 마시니 다행이라고 했지만 문제는 피부였다.


우리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


건조한 공기는 밤새 널어둔 젖은 수건은 물론이고 내 피부까지 쩍쩍 갈라지게 했다. 거울을 보며 ‘이 주름은 날씨 탓이지 나이 때문이 아니다.’ 주문을 외며 덕지덕지 수분크림을 바르면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라디에이터의 온도를 조금 줄이고 가득채운 물컵을 머리맡에 두면 잠자리에 들 준비가 끝이 난다. 수면 양말에 레깅스, 양털 집업으로 무장을 하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 올리지만 찬 공기는 여전하다. 옆 방에서도 콜록콜록 마른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언제쯤 베를린 날씨에 적응할 수 있을까.


이전 02화 베를린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