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혼란
문을 쾅 닫고 들어간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이 아이, 사춘기인 걸까? 아니면 그냥 반항하는 걸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연달아 쏟아내던 아이였다.
"엄마, 걔가 진짜 말도 안 되게…"
하며 하루의 감정을 내게 기대듯 말하던 아이.
그 아이가 갑자기 묻는 말에 대꾸도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왜?"라고 물으면
"그냥!" 하고 대답하며 시선을 피한다.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이 나오려다 참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이건 사춘기인가, 아니면 단순한 반항인가?
사춘기는 당연히 겪는 변화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가 그 시기를 통과할 때는
혼란스럽고 불안해진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사춘기의 감정 변화와
단순한 ‘버릇 없음’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민한 말투, 짜증, 무시하는 태도,
때론 거짓말, 귀찮아하는 얼굴.
이 모든 게 ‘과도기’의 신호일 수 있는데
부모는 순간순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그리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이해해야지 하면서, 왜 난 이렇게 욱하지?”
많은 부모가 아이의 거친 말과 냉정한 태도에서
‘반항’을 떠올리지만,
실은 자기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거리 두기일 때도 많다.
중학생 아이는 자신의 내면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자존심은 자라고 있지만 언어는 부족하고,
감정은 복잡하지만 표현은 서툴다.
그러니 그들은 차단이라는 방식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게 때로는 냉소고, 때로는 짜증이고,
어쩔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다.
아이를 보며 혼란스러운 건
사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변해가는 나의 역할 때문이다.
예전엔 아이의 모든 것을 도와줄 수 있었고,
엄마라는 이름이 곧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손에서 벗어나려 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한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데,
아이는 이제 보호받기보다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바꿔본다.
‘왜 저러지?’에서
‘뭘 느끼고 있을까?’로.
‘어떻게 바로잡을까?’에서
‘지금 필요한 건 뭘까?’로.
어쩌면 지금은
조언보다 공감이 먼저,
지적보다 기다림이 먼저일지 모른다.
사춘기인가, 반항기인가.
그 경계선에서
매일 자신을 다잡으며
아이와 마주하는 당신이 있다.
혼란스럽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지금도 당신이
아직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아이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단단한 신뢰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