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에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작은 온천 마을. 처음 그곳에 내렸을 때만 해도, 제 인생이 이 마을과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랐습니다. 습한 여름 공기 속에 섞여 있던 은근한 유황 냄새, 골목마다 피어오르던 하얀 온천 증기, 정류장 앞 낡은 슈퍼와 1인 이발소. 서울에서만 살던 제게 그 풍경은 너무도 낯설고, 그래서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신문을 넘기던 노인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라면 하루를 다르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돌아오고 나서도 그 마을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몸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늘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한 번의 여행이 아니라, 매년 찾아가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겨울 눈 속에서 피어오르는 증기, 봄 언덕길의 산벚꽃, 여름 강물의 시원한 소리, 가을 단풍길의 선명한 색—은 제가 잃어버리고 있던 감각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왜 하필 온천 마을이었을까? 아마도 그곳은 제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일 겁니다. 서울에서는 늘 ‘해야 할 일’과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 속에서 자신을 잃어갔지만, 그 마을에서는 ‘살아 있는 하루’가 제 손에 잡혔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번아웃이 극심해졌을 때 저는 다시 그 마을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머무를 공간을 찾는 사람으로. 그리고 결국 그곳에 카페를 열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첫 만남의 인연이 제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낯선 공기와 풍경이 저를 이끌었고, 그곳에서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