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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임민아 Aug 06. 2023

아일랜드행 비행기에서 <퇴근 후 한 끼>

10시간 비행, 창가 자리에 앉아서 시간 때우기

“여행한다는 것,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깊은 충족감을 준다. 어딘가로 가고 있을 때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리베카 솔닛 <마음의 발걸음>, 김정아 옮김, 반비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는 바로 그 순간,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란 말이지!


기내용 여행가방을 끌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일이 벌어질 걸 예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여행자. 공항버스를 놓칠까, 탑승수속이 늦어지는 건 아닐까, 수하물 보안검색할 때 걸리는 물건을 넣지는 않았는가, 이런 잡생각의 파편이 쉬지 않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몸을 실은 후에야 긴장감의 절반이 날아갔다.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가방을 번쩍 들어 올려 선반 위에 넣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장거리 비행일지라도 무조건 창가 자리를 고수하는 나는 털썩 자리에 앉는 순간 온몸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책도 펼쳐놓고, 아이패드 꺼내서 그림도 그려보고, 흰구름을 뚫고 올라가 대기권 상층부로 떠올랐을 때 슬쩍 카메라로 인증샷도 찍어보고!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이 사람 비행기 처음 타봤나?’라고 생각할지언정 눈치 보지 말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그 시간을 즐겼다.




글로벌 퇴슐랭 <퇴근 후 한 끼>

일본 오사카 전통 로바타야키

오 박사님 등에 붙은 모니터를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방송을 봤다. <퇴근 후 한 끼> 한 장면!

두바이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고 여덟 시간쯤 날아갔을 때였나? 기내식도 먹었고, 잠도 잤고, 사진도 실컷 찍었다. 더는 즐길거리가 없어서 모니터를 눌렀고, 내 손가락은 <퇴근 후 한 끼>라는 예능을 선택했다. 요즘 요식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서 그런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갑자기 오 박사님 말씀이 떠오르네. 내가 애니어그램 7번 유형이라고… 암튼, 오늘도 세상의 온갖 재미난 일을 다 해보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누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퇴근 후 한 끼>는 JTBC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인데 김구라, 한혜진, 정준하 등이 출연하는 글로벌 먹방 예능이다. 특이한 점은 전 세계 직장인들이 퇴근 후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는 것. 퇴근길 미슐랭 가이드를 만드는 ‘퇴슐랭 컴퍼니’라는 가상의 오피스가 등장하는데, 네이밍이 완전 맘에 들었다. ‘퇴슐랭’이라니! 간판으로 쓰고 싶을 정도!!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4부작으로 기획한 방송이고 4월 20일에 최종회가 방영됐다. 8월인데 정규 편성 소식이 없는 걸 보니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꽂혔던 장소는 1회 방영분 중에 마츠다 부장과 정준하가 함께 간 일본 오사카에 있는 전통 로바타야끼였다. 가타카나 ‘코(コ)’자 형태의 테이블 안쪽으로 ‘이로리(화로)’가 있다. 가리비, 뿔소라, 왕새우, 베이컨말이꼬치 등 식재료를 고르면 즉석에서 구워준다. ‘샤모지’라고 하는 긴 나무 주걱 위에 요리를 올려 손님 눈앞으로 쓰윽- 내미는 게 포인트!



왕새우구이가 진짜 맛있겠다 싶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술 탱크에서 좔좔 흘러나오는 ‘니혼슈’가 잔에 가득 담겨 찰랑거리는 순간도 감동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음식과 술이 나온 이후에 본격 시작됐다.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퇴근 후 로바타야끼를 찾은 손님도, 그게 누구라도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고 친해질 수 있는 장소라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면서 풀고, 즐거움은 배로 늘릴 수 있는 ‘퇴근 후 친해지는 한 끼’를 즐기는 곳!

맛있는 음식과 술과 이야기가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


“펍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 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

- 제임스 조이스 소설 <율리시스> 중에서


이번 아일랜드 여행에서 기대되는 또 한 가지는 ‘아이리시 펍 문화’였다. 더블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을 ‘템플바’로 정했다. 그저 술과 음식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술 한잔을 곁들여 이야기 나누고,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고 싶다는 주민들 얘길 들어보면, 백이면 백 ‘카페’를 만들겠다고 얘기한다. 비교적 쉽게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주일 내내 문을 열어도 한 사람 인건비와 재료비 정도 겨우 나올까 말까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도 하루에 대여섯 잔씩 커피를 마시지만, 이제 좀 색다른 문화공간을 만드는 시도를 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바이 도착! 이제 더블린으로!!

응? 근데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고??


다음 이야기는 어쩌다 두바이에서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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