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코치를 기억합니다.

나의 영원한 꽃미남 유격수, 민재 오빠에게

by 이유 임민아

중학생 때였다.

처음 사직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고

검표 후 몇 개단 올라섰을 때

시야가 확 트이면서,

초록색 그라운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한 번에 확!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세상에 이런 공간이 있었구나.’


그날 이후로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경기를 보는 것보다
넓은 공간에서 소리치고 노래 부르면서

뜨겁게 타올랐던

그 감각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야구장을 찾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몰래 경기를 보러 다닐 만큼 열성 팬이었다.


롯데자이언츠 꽃미남 유격수 김민재(No.14),
나에게는 청춘의 한 장면 같은 존재다.


김민재 선수가 롯데에 있을 때도

FA로 SK와이번스로 이적했을 때도

한화이글스로 이적했을 때도

은퇴 후 코치로 일을 할 때도

나는 민재 오빠의 열혈 팬이었다.


'SOLD OUT'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원정경기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부산 원정 경기를 와서는
직접 고기를 구워주기도 했다.
선수와 팬이라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순간들이었다.



2002년 사직구장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날,
생에 첫 금메달을 딴 경기에서 썼던 모자를

수많은 팬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건네줬다.
나는 아직도 오빠가 준 모자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야구장을 다시 찾았을 때
오빠는 웃으면서
“이제 그만 온나!” 하고 핀잔을 주듯 말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찾아주는 팬이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해 줬던 것 같다.

오늘 아침,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천벽력이라는 말 말고는 떠오르는 표현이 없었다.

3년 전쯤이었나.
갑자기 오빠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 깬 뒤
별생각 없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오빠,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너무 젊은 나이에 떠났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이들도 생각나고
이 말 저 말 머릿속을 스쳐가는데
정작 아무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슬프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힘들고
명복을 빈다는 말조차
지금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김민재의 팬이다.


이 글이
멀리 떠나는 오빠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야구장처럼
넓고 환한 곳에서
부디 평안하게 쉬고 있기를.
그리고 “멋진 여행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오빠,
고마웠어요.
그리고 안녕히...


[2025.05.29] 중계 화면에 김민재 코치가 잡히는 날은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진 날이다. 내가 본 민재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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