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지는 시청, 목사는 시장”

파주목관아지복원추진위원회

by 이유 임민아
양주관아지2.jpg 경기도 양주시에서 복원한 양주목 관아


“조선시대 437년간 현 파주읍 지역에 소재하였던 파주목 관아지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습니다. 많은 주민께서 파주목 관아지를 복원해야 하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대식을 했습니다. 열아홉 차례에 걸쳐서 국방부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학술 고증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양주시에도 양주목 관아지를 복원해 역사적 교육적으로 활용하여 지역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이 고민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제로’에 가까운 내가 과연 추진위원회 분들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래서 열정 만수르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렸다. 너무 어렵게 말씀하시면 방송 보는 분들이 힘들 수 있으니,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역시, 찰떡같이 알아들으신 우리 정문갑 회장님! 중간중간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끊었다가 질문도 해주시고, 거의 진행이 손석희 아나운서급으로 매끄러웠다.


“요즘 신세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관아지는 무엇입니까?”

“우선 파주목 관아지는 지금으로 말하면 파주시청입니다. 조선조 때 파주목에서 목사가 근무했습니다. 목사는 지금의 파주시장입니다.”

“조선시대에 파주목이 어떤 위치에 있었습니까?”

“향교를 포함해서 전체 26개의 건물이 존재했고, 659칸의 방이 있었습니다. 매우 큰 규모죠. 목사 1명을 포함해서 725명이 여기서 생활하고 근무를 했던 거죠.”

“그러면 721명이라는 그 인원이 요즘으로 말하면 다 공무원입니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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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일 위원장님 말씀에 따르면 명나라 사신이 한양에 갈 때 신의주에 들러 자고, 다음으로 파주에 들러 잤다고 한다. 돌아갈 때도 파주에서 잠을 잤는데, 지금으로 치자면 영빈관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명나라 사절이 오면 명단이 왕한테 보고가 됩니다. 왕이 명단을 보고 ‘영의정 자네는 파주목에 가서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거기서 모든 일을 하고 보내게’라고 명을 내리면, 사신이 한양에 가지 않고 파주목 행궁에서 일했습니다. 그런 역사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뷰하기 전 올라갔던 파주향교 일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행궁(객사)이 있었다니! 만약 복원된다면,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꼭 하룻밤 묵고 말리라!


이날 자리에 함께한 김광선 감사님은 파주읍에서 75년을 사셨는데, 어릴 때 보안부대 근처에 향나무 울타리가 어마어마했었다고 말씀하셨다.


“85세 되신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면 파주초등학교부터 관아지 건물이 있었고, 그 뒤로 파주파출소 자리부터 향교 앞까지 다 관아지 건물이었다고 말씀하셔요. 그런데 6.25 전쟁 때 초토화됐고, 워낙 자리가 좋아서 미군이 주둔했던 거죠.”


미군들이 물 좋고, 경치 좋은 데는 다 점령해서 부대를 건설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아무튼, 미군이 빠지고 1사단 안보지원부대(전 기무부대)가 50년간 자리를 잡고 있다가 2019년 12월 이전했다.


“관아지 중심에 있던 1사단 기무부대가 이전했기 때문에 그 부대가 위치한 지역의 부지를 반환받기 위해서 파주시와 의회에 예산 반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파주시의회에 입성한 이익선 전 사무국장의 말이다. 당시 인터뷰할 땐 ‘복원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했었는데, 시의원에 당선되셨다니 파주목 관아지 복원 추진에 탄력이 붙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나! 지역신문 ‘파주시대’에서 ‘파주목 관아지 복원을 위한 시굴 조사에 들어간다(2022년 11월 8일 자)’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가 현존한 덕분에 조선시대를 알 수 있었던 것처럼 2022년 현재를 사는 우리도 주민의 삶을 잘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아주 진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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