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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Nov 27. 2019

순간을 유희하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어린아이처럼

니체와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언젠가 산을 올랐습니다. 나는 날씨 좋은 날, 특히 봄에 산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숲을 보면 세상의 이치와 같은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사람의 삶처럼, 관계나 사회생활처럼 고되고 험난합니다. 산 넘어 산이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산을 오르면 가끔 롤 트랩에 감싸진 나무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관리인이 어딘가 아픈 나무에 약을 발라놓고 잘 스며들고 증발하지 말라고 감싸 둔 것입니다. 산 곳곳에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산을 건강히 자라게 하려고 비료를 뿌렸습니다. 상쾌한 공기와 찡긋한 비료 냄새가 섞여 비렸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산 또한 아프면 아픔을 돌봐주는 이가, 건강하고 푸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이가 존재합니다. 


모든 존재는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삶을 덧대어 보면 사소한 것들도 각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르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더군요. 산을 오르며 현재와 과거의 나를 돌이키며 생각하기도, 내려가며 앞으로 다가올 나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산 위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힘이 들 땐 뒤를 쳐다보며 목표까지 가자라고 힘을 북돋기도 하고 끝내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요. 나는 뒤를 쳐다보며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하기보다 ‘내가 이만큼이나 왔어. 조금만 더 힘내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중요합니다. 이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정신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첫 문장에서 정신의 세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구분했습니다. '낙타'는 주인이 시키는 당위적 세계에서 복종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낙타는 의식이나 성찰 없이 주어진 시간을 복종하는데 할애합니다. 인간은 이와 같은 당위적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힘을 지녀야 합니다. '사자'는 타율적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자 또한 자신의 가치는 찾지 못합니다. 니체는 '어린아이'의 단계에 궁극을 두었습니다. 아이는 자유롭기도 하고 복종하지도 않습니다. 가치를 찾아 유희할 수 있는 단계. 자신의 삶에 있어 부정-긍정, 선-악, 미-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지입니다(참고).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순간을 유희하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어린아이'처럼 되고 싶습니다.

지금 시련을 겪고 있는 내가 이내 마음다짐을 다잡고 앞으로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에서 잠시 동안의 휴식기라고 생각하고 싶고, 벤치에 앉아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좌,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Frieda and Diego Rivera)>, 100.01×78.74 cm, 1931 / 프리다 칼로  | 우, 실제 사진

프리다 칼로는 모두에게 위용적이며 만대에도 어김없이 회자될 멕시코 화가입니다. 생전에 그다지 주목받는 화가는 아니었고 멕시코 민중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받습니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 사랑과 전쟁이 시트콤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선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 언급해두고 싶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벽화 작품으로 살아생전 유명했습니다. 남미의 화려한 색감을 화폭에 재현했고 멕시코 특유의 정신을 구현해 거장 예술가로 평가받습니다. 1922년부터 1929년까지 멕시코 국립 예비학교와 교육부 건물에 벽화를 그렸는데 주요 주제는 인디오들의 농업과 삶이었고, 사회비판적인 벽화 제작에 힘썼습니다.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체계화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 : 참고) 이념의 영향을 받아 서사적인 리얼리즘(사물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통칭하는 개념 : 참고) 회화를 지향했습니다. 군부독재와 자본주의 역시 각종 인물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비판해 대중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내 방 한 켠에도 디에고 리베라의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 엽서가 달려있습니다.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 개최되었던 디에고 리베라 展에서 가품을 실제 크기로 전시했는데 그 웅장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알라메다 공원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 4.8 x 15m, 1947 / 디에고 리베라


비둘기와 코끼리의 사랑.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앞서 말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부르는 애증의 호칭입니다.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그림을 디에고 리베라가 평가해줄 것을 부탁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불륜과 이혼, 재혼을 반복하며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보냈습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화려한 여성편력이 유명한데요. 유부남의 바람기론 모자라 혼외자식도 있어서 도덕적 관념이 의심스럽죠. 영화 <프리다(2003)>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인 크리스티나 칼로와의 불륜설을 채택해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프리다 칼로가 목격합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예술의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의지하는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적이기도 했고요. 수많은 역경을 지나온 그녀는 영화 <프리다(200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생 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6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Yo sufrí dos accidentes graves en mi vida, uno en el que un autobús me tumbó al suelo. El otro accidente es Diego;. Diego fue el peor.


프리다 칼로는 1925년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 교통사고로 인해 그녀의 삶의 목표와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하굣길에 탄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면서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쇠 봉이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나왔습니다. 이 사고가 그녀에게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쇠 봉이 자궁 또한 관통해 버렸기 때문인데요.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고 의사들은 그녀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녀는 인생 동안 30여 차례의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으며 평생을 보내야 했습니다(참고).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두 손으로 병실에 있는 것 중 가장 그리기 좋은 것. 즉 자기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녀는 평생 아이를 원했지만 사고 후 후유증이 매우 심각해서 매번 유산을 했습니다. 


<헨리 포드 병원>, 30.5x38cm, 1932 / 프리다 칼로

<헨리 포드 병원>이라는 작품은 자전적인 슬픔과 고통을 처음으로 담아내어 중요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당시 프리다는 벽화 제작을 의뢰받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따라 미국 디트로이트로 떠나 있었고, 첫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석 달 만에 유산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쓰라린 기억을 구현했습니다. 아이가 유산되어 슬픈 그녀의 감정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녀는 후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작업을 전념하다 폐렴이 재발되어 폐경색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사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모두 국보로 지정했습니다(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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