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사내연애를 시작했을 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연애를 회사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었다. 내 친한 친구 중 몇몇은 사내연애를 조심해야 한다며, 말렸지만 이미 멈출 수 있는 시기가 지난 상황이었다. 물론 누가 말려도 내가 이 연애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일단 이렇게 찾아온 인연을 소중하게 잘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상대방은 외국인이었고, 신입사원이었음을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었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내가 무던히 그냥 연애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 때, 아내의 머릿 속은 이미 굉장히 복잡한 상태였던 것 같다.
나: 이제 우리 회사에서도 보고, 밖에서도 볼 수 있겠네요. ^^
아내: 네, 좋기는 한데 저 좀 무섭습니다.
나: 네? 뭐가 무서워요? 그냥 편안하게 잘 만나면 되죠~~
아내: 저 아직 신입 사원이고, 부장님 아시면 안되요. 다들 저에게 혼낼거에요.
나: 왜 혼내요? 설마 그렇게 하겠어요? 어차피 다들 연해 하잖아요.
아내: 그래도 눈치 못알게 조심해서 하도록 해주세요.
나: 네 그래요. 나도 조심할게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생각해 보니, 나는 회사에서 어느정도 경력이 있는 과장이어서 중간층이었고, 아내는 그 당시 신입사원이었으니, 사내연애를 한다는 것에 대해 압박감이 굉장했던 것 같다. 주변에 온통 상급자들이 있었고, 그 상급자들은 아내가 느끼기에는 모두 무서운 학교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우리의 관계를 들키면 안된다는 압박감 속에 눈치를 많이 봤다. 반면, 나는 편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누군지 상대는 밝히지 않고 연애를 다시 시작했다고 이야기 했고, 이 연애가 나의 회사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사내 연애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회사 건물 계단 이용해 많이 만났는데, 우리 사무실의 층보다 2-3층 위로 올라가서 그 층간에서 만나서 짧은 만남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 야근도 많고 힘든 업무 중에도 그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과 대화하며 에너지를 받았었다. 회사에서 업무가 일찍 끝나고 나서 외부에서 만날 때도, 회사 근처에서는 만나지 않았다. 지하철로 2-3정거장을 더 가서 특정 커피숍에서 따로 만나 데이트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첩보영화의 스파이 처럼 다른 회사 직원이 있는지 먼저 주변을 살피고 서로 아는 척을 했었다. 우리가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큰 싸움 없이 잘 지내는 것을 보면, 남들 몰래 하는 데이트 방식도 우리에게 잘 맞았던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게 2-3개월의 연애 끝에 나는 변화를 주기로 했다. 나는 그 당시 내 팀장님, 본부장님, 팀원들과 관계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도 같이 공유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들에게 연애 상대가 내 아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그들에게 당분간은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 이야기를 본부원들에게 하기 전에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 이제 내 본부 사람들에게는 오픈을 하는게 어떨까요?
아내: 네? 안되요. 그럼 금방 사람들이 다 알거에요. ㅠ_ㅠ
나: 우리 본부 사람들은 괜찮아요. 다들 우리에 대해 격려하고 좋게 이야기해 줄 거에요. 그리고 당분간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게요.
아내: 오빠가 원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정말 우리 부장님이 아시면 안되요..... 나 무서워....
나: 걱정 말아요.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할게요!
그 당시에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회사에 오픈하면 우리 관계를 누구에게 숨기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하고,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몰래 하는 사내연애는 물론 두근두근한 긴장감이 있지만, 그 긴장감 속에는 안정감이 없었다. 우리가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굳이 다른 사람 몰래 이렇게 만나야 하지? 다 오픈해버리고 편하게 만나면 안될까? 무엇보다 그 당시 싱글이었던 내 아내에게 주변에서 자꾸 소개팅을 권유하는 탓에 불안한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빨리 사람들에게 오픈해야 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린다는 것에는 긴장감과 기쁨이 같이 존재한다. 남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며 이야기 한다는 것이 기쁜 소식을 전할 때는 마음을 더 즐겁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본부장님에게 이야기 했을 때, 그는 나와 아내 사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나: 본부장님 저 oo랑 만나고 있어요. 1-2달 정도 되었습니다.
본부장님: 그래? 의외인데, 괜찮겠어? oo보다는 **가 좀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리고 어찌 만난거야? 프로젝트 해본적도 없잖아???
나: 네, 이야기 해보니 의외로 저랑 잘 맞는 면이 있더라고요. 오다가다 그렇게 되었어요. 하하하.
본부장님: 그래도 잘 되었네, 축하해. 나중에 좀 더 편안해 지면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자. oo는 좀 차가워 보이는 도시 여자 같은데, 너랑 잘 맞으려나?? 잘 만나~
본부원들은 모두 우리가 만난게 의외고,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커플이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우리 본부원들도 아내의 성격이나 특징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니 당연했을 거다.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길 부탁하긴 했으나, 그들 중 누군가는 또 친한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전달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내가 말한 그 순간 부터 비밀이 아니게 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우리의 관계를 내 본부 사람들에게 오픈 한 이후, 나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너무나 기쁘게 우리 얘기도 하고, 아내와 몰래 만나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도 아내에게 그쪽 본부에도 오픈하는 것이 어떤지 권유했었다. 아내는 많이 망설였다. 이제 막 들어가서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으니, 아내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권유였을 것이다.
나: oo씨 이제 팀원들에게 오픈 하는게 어때요?
아내: 안되요. 저는 신입사원이라 무서워요. 오빠는 본부에서 괜찮으세요?
나: 전혀 문제 없어요. 다들 잘 되라고 격려해 주는 걸요.
아내: 무서워요.......
나: 괜찮아요. 우리가 아무 문제 없잖아요. 다들 자기한테 소개팅도 권유하고 하니까 나는 그게 별로 안좋아요. 오픈 하면 좋겠어요.
아내: 제가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사내연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좋다면 매우 추천할 만하다. 일이 힘들면, 같이 일에 대한 이야기,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을 좀 풀 수 있고, 회사에서 잠깐 지나치는 순간에도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회사 일에 방해가 되기 보다는 오히려 생산성이 늘어 좀 더 집중해서 빨리 일을 잘 끝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이 빨리 잘 끝나야 데이트 할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사내연애를 비밀로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 재촉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꼭 두 사람 모두 동의 해야 가능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공개해서 나올 수 있는 그들의 반응을 우리가 알 수는 없다. 격려와 축하도 있겠지만, 비난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어찌보면 그 당시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오픈하자고 했던 것이 아내에게는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결국 몇 주의 설득 끝에 아내는 팀장님에게 이 이야기를 먼저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게 몇 개월 동안 아내의 부담감을 더 키워줬을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해야할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사내연애에 익숙해지고, 좋은 점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기분좋게 서로를 북돋는 관계가 되었다. 업무적인 측면도 같이 의견을 나눴기 때문에, 이 당시 우리의 보고서나 제안서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내 아내의 것이기도 했다. 서로의 업무를 같이 리뷰하며 의견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방향을 바꿔 작성된 것도 있다. 물론 큰 변화는 아니지만, 작은 부분에서라도 발전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사내 연애를 한다고 하면 추천하고 싶다. 서로 관계가 안좋으면 어렵겠지만 관계가 좋다면, 서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연애인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이성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변화했으니, 내 아내도 마찬가지 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