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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Nov 23. 2019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아이리시 맨>

대단한 파노라마, 진정한 시네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아이리시맨> (2019)은 '모두가 보인다'라는 의미가 있는 그리스어 'panhoran'을 떠올리게 만든다. 긴밀하게 하나가 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세월에 걸친 미국의 방대한 현대사와 미국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원경으로, 그리고 그 시대 속 다양한 인물들을 입체적인 전경으로 삼아 파노라마를 완성한다. 이 파노라마는 찰스 브랜트의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를 원작으로 삼고 있으며,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를 중심으로 뒤늦게 시간 속의 존재임을 깨달았지만, 더는 지울 수 없는 잔혹함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아이리시맨>의 대서사는 프랭크의 네 가지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대해 필라델피아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중 '러셀(조 페시)'의 눈에 들어 암살자로 영입된 젊은 시절의 시간이다. 두 번째 시간은 조직 내 다른 권력자이자 미국 최대 화물운송노조 위원장 '지미(알 파치노)'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하게 된 중년 시절의 전반부 시간이다. 세 번째 시간은 케네디 정권의 표적 수사에 걸려 감옥살이를 하게 된 '지미'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하던 중 조직원 간 갈등이 심해지자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년 시절의 후반부 시간이다. 네 번째 시간은 지미 호파 실종사건 이후 뒤늦게 후회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응시하는 노년의 시간이다. 



<아이리시맨>은 네 번째 시간 속을 살아가는 '프랭크'가 앉아 있는 곳까지 움직이는 카메라의 시선과 그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세 번째 시간으로 이동하고, 그 시간 안에 첫 번째 시간이 또 다른 플래시백으로 삽입된다. 이와 같은 시간 구도는 대개 시간과 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한 틈을 채우고 회복하려는 서사적인 목적으로 활용된다. 그렇지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런 관습을 거부한다. 대신, 이 시간적인 구도는 <아이리시맨>에서 시간과 시간 사이에 생긴 틈을 좁힐 수 없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시간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인간을 죽음의 시점에서 담아내기 위해 채택되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간 속 '프랭크'는 시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프랭크'는 그저 자신을 인정해주는 '러셀'과 '지미' 사이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두 사람의 명령을 직접 행동에 옮기는 수행자의 삶에 만족한다. 하지만, 세 번째 시간에 접어들었을 때 '프랭크'는 권력을 되찾으려는 '지미'와 그게 못마땅해 제거하려는 나머지 조직원들 사이의 중재자의 삶을 보내기 시작하고, 세 번째 시간의 삶 끝에서 뒤늦은 깨닮음을 얻는다. 침묵을 깨고 지난 시간을 되돌리려고 하지만 '프랭크' 앞에 놓인 건 앞으로의 혹독한 시간이었고,  그 혹독함은 딸 '페기(안나 파킨)'가 자기 곁을 떠났다고 말하는 회한이 묻은 목소리에서 드러난다.



'프랭크'는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은 세월을 보낸 가족에게 사과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남은 고독하게 시간의 대가만을 치르는 남은 삶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양로원에 진입한 카메라는 서서히 빠져나온다. 그 과정에서 '프랭크'에게 새겨진 시간의 잔혹함을 환기하는 여러 장면이 쏟아진다. 아내의 장례식 이후 혼자서 아내의 흔적을 정리하는 장면, 딸 '페기'가 근무하는 은행을 방문해 용서를 빌려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이런 상황을 무력하게 떠나보내는 장면,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 힘없이 고부라져 쓰러지는 장면, 혼자서 죽음을 준비하는 장면 등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문틈으로 외로이 응시하는 '프랭크'의 모습과 그런 모습을 담아낸 카메라의 시선에 서려 있는 어두운 여운을 일회적이지만,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된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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