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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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으며, 곧 다가올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6개 부문(각색상, 미술상, 여우조연상, 의상상, 작품상,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2019)은 나치 시대라는 끔찍한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준 작품이다. 우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마블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2017)에서 보여줬던 유머 감각과 약간 ‘Wes Anderson-ish’한 미장센으로 반혐오 풍자극(anti-hate satire)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을 일으키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비판과 곤경에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두려움 속에서도 견지해 가는 삶을 일기로 작성한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기림으로써 비극적인 사건을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조조 래빗>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독일 소년단을 지도하는 ‘클렌젠도프(샘 록웰)’의 대사, 무기를 생산해야 하지만 자원이 부족해 동네에서 철을 수집하는 업무를 돕는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의 장면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조 래빗>은 영화적 허용을 활용해 1940년대에 1920년대와 1930년대 나치 정권의 산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는 1922년에 설립된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라는 청소년 조직을 극 중 독일 소년단을 구상할 때 반영했거나 독일 소년단의 캠핑 장면에서는 1933년 5월 나치 정권이 일으킨 베를린 분서 사건(Bücherverbrennung)을 참고했다. 게다가, 원래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를 극 중에서는 최전선 가까이에 있는 독일 마을로 옮겨 반영했다.
나치 정권을 비판하고 짓밟는 풍자극
‘조조’를 포함한 독일 소년단원들은 항상 단검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 이 단검은 실제로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이 지니고 다녔던 유겐트 단검이다. 유겐트 단검에는 전체주의적 슬로건이 새겨져 있을뿐더러 나치즘을 상징하는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스스로 나치광임을 자처하는 ‘조조’가 유대인 ‘엘사(토마신 맥켄지)’에게 쉽게 단검을 빼앗겨 굴욕을 당하는 장면, ‘조조’의 친구가 숲 속에서 던진 단검이 나무에 튕겨 다른 친구의 허벅지에 꽂혀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장면 등을 삽입해 나치즘이 청소년에게 세뇌시키려고 했던 ‘피와 명예’라는 슬로건을 짓밟는다. 끔찍한 시대의 산물 및 사건을 전하면서 짓밟는 방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베를린 분서 사건이 있다. 영화에서 베를린 분서 사건은 독일 소년단의 캠프파이어로 변주되어 소개된다. 소년단원들이 캠프파이어를 위해 책들을 모닥불에 던지는데 캠프파이어 시퀀스가 끝날 때쯤 불태워지는 책들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구체적인 책 제목이나 작가명을 확인할 수 없지만, 책에 새겨진 어떤 상징체를 클로즈업해 보여줬다는 점에서 1933년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독일 국민들의 정신 획일화 및 세뇌를 위해, 그리고 비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키기 위해 태운 책들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극 중 소년단원들의 웃음소리와 캠프파이어의 불빛을 거두면 장면의 심층에서 실제 사건의 참담함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참담함은 나중에 통쾌함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책을 태우는 강렬한 불씨가 후반부 전멸되는 나치군을 휘감는 불씨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일 소년단의 캠핑장에서 ‘클렌젠도프’가 무기 사용을 시연하려고 하는데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가 그 앞을 뛰어다니는 장면은 레니 리펜슈탈 감독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 (1934)과 같은 기록물에 담긴 아돌프 히틀러와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숲 속을 뛰어다니는 히틀러를 토끼의 뜀박질에 등치시켜 히틀러를 우상화하려고 했던 독일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를 조롱의 대상으로 깎아내려 웃음을 유발한다. 이뿐만 아니라 중후반부 ‘조조’의 집 시퀀스에서 나치 경례가 대략 50회 실시되는데, 이처럼 남발된 경례는 축적되면서 또 다른 웃음을 유발한다. 원래 나치 경례는 히틀러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모습을 형상을 행위로 표현된 것이고, 손끝이 로우 앵글 쇼트처럼 아래에서 위로 향하므로 이는 그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나치즘의 산물이다. 근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인물들이 히틀러에 충성하는 듯한 허상을 만든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에서 실제 역사를 수정해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겼던 누군가에게 위로를 안겼던 것처럼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히틀러가 허수아비로 취급받는 시대적 분위기를 만든 후 무고한 시민과 유대인의 재능과 자유를 말살했던 나치 시대를 희생자들을 대신해 짓밟는다.
안네 프랑크에게 바치는 헌시
<조조 래빗>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반혐오 풍자적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멈추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실존 인물의 꿈을 영화에서라도 대신 이루려는 자세를 취한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아마 이 영화는 『안네의 일기』 (1947)를 남기고 안타깝게 일찍 생을 마감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미처 다 피우지 못한 꿈을 대신 펼쳐 바친 헌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배우 토마신 맥켄지가 연기한 ‘엘사’라는 캐릭터는 안네 프랑크와 오버랩이 된다. 왜냐하면 안네 프랑크가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한 건물의 비밀 공간에 은신해 생활했듯이, ‘엘사’도 ‘조조’의 집에 숨겨진 공간에서 숨소리를 죽이면서 살아가고, 간간이 ‘로지(스칼렛 요한슨)’과 ‘조조’의 도움을 받아 의식주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믈론 ‘엘사’는 안네 프랑크처럼 일기를 포함해 어떤 글도 쓰지 않는다. 영화에서 글쓰기는 오로지 ‘조조’의 몫이다. 그렇지만, ‘엘사’에게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그녀에게 안네 프랑크의 재능과 총명함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가끔 클로즈업 쇼트에 담긴 ‘엘사’의 표정은 자기 내면에 침잠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며 조숙해진 안네 프랑크의 삶을 연상시킨다. 비록 긴 세월이 흘렀지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영화를 활용해서라도 춤과 자유를 매개로 재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안네 프랑크에게 평안과 위안을 주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집 바깥에서 ‘엘사’가 조조’와 함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음악 ‘Heroes’에 맞춰 춤을 추는 시퀀스는 바깥에서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구경하고, 청춘을 즐기고, 그리고 춤을 추는 자유를 끝내 만끽하지 못한 안네 프랑크에게 헌정하는 시퀀스다. 무엇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기 직전에 인용된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Geh bis an Deiner Sehnsucht Rand(영어 제목: Go to the Limits of your Longing)’의 일부분 또한 힘든 시대 속에서도 꿋꿋이 나름의 행복을 찾아 나섰던 안네 프랑크에게 들려주고 싶은 텍스트일 테다. 그리고 이는 <조조 래빗>을 관람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Lass dir Alles geschehn: Schönheit und Schrecken.
(Let everything happen to you: beauty and terror.)
Man muss nur gehn.
(Just keep going.)
Kein Gefühl ist das fernste.
(No feeling is final.)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Geh bis an Deiner Sehnsucht Rand’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