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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Feb 14. 2020

예술의 정의할 수 없는 힘을 깊이 있는 영화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작가 미상> (2018)


독일 출신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는 단편영화 <Mitternacht> (1997), <Das Datum> (1998), <Dobermann> (1999), <Der Templer> (2002)를 연출한 후 첫 번째 장편영화 <타인의 삶> (2006)으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시작한 감독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연출한 두 번째 장편영화는 <투어리스트> (2010), 세 번째 장편영화는 <작가 미상> (2018)이다. 그가 연출한 단편영화들을 접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필모그래피에서 장편 영화가 단 세 편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뤄볼 때 영화에 투영된 그의 가치관이나 믿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4년 동독을 배경으로 한 <타인의 삶>과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을 관통하는 <작가 미상>을 비교했을 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예술의 정의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힘을 진심으로 믿는 연출가 중 한 명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는 이런 예술의 힘을 영화에서 보여주기 위해 문학 작품을 단순히 인용하거나 실제 미술 작품을 단조롭게 프레임에 배치하는 소모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힘을 짙게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깊게 제공할 것인지 고민한다.



<타인의 삶>에서는 독일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johann Robert Hauptmann)의 연극 ‘Gesichter der Liebe’,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시 ‘Erinnerung an die Marie A.’, 극 중 극작가 ‘드레이만(세바스티안 코흐)’이 독일 통일 후 ‘비즐러(율리히 뮤흐)’에게 바치는 첫 장편소설 ‘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등을 인용할 때 대부분 ‘비즐러’의 클로즈업 쇼트와 함께 결부시킴으로써 슈타지(Stasi) 요원인 ‘비즐러’의 심경 및 행동의 변화를 촘촘하고 짙게 그려낸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타인의 삶>에 활용된 실제 작품과 영화를 위해 가공된 가상의 작품 모두 어떤 대상을 이분법적인 틀에 가두지 않도록 영화의 중심을 잡아줄뿐더러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인 권력 구조 안에서 체계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내면 변화를 펼쳐내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작품 인용과 클로즈업 쇼트의 결합은 ‘비즐러’가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함에 따라 개인적인 손실을 감수하면서 역사의 주체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짙게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그런데, <타인의 삶>이 깊은 영화라기보다 짙은 영화에 가까운 이유는 영화에 인용된 다른 예술 작품들이 철저히 인물 중심적인 반면, 촬영술이나 편집 기법에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 (2019)를 떠올리면 된다.



이와 달리,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독일 화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가 미상>은 <타인의 삶>보다 한층 더 성장하며 깊은 영화가 되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동독 드레스덴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을 하던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61년 서독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후 몰두했던 1960년대 초기 회화 특징인 구상 사진 회화를 <작가 미상>의 시발점으로 삼는 동시에 중추로 설정했다. 특히, 실재 세계를 온전히 작품에 나타내는 작업을 중시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시선은 ‘쿠르트(톰 쉴링)’의 셔레이드와 내면에 투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에우리디케의 시선을 추출해 영화의 주요 시점으로 삼았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처럼 <작가 미상>에서 카메라가 지녀야 할 시선의 베이스가 되었다. ‘쿠르트’의 유년 시절 당시 이모 ‘엘리자베트(사스키아 로젠달)’가 ‘남긴 “절대 눈 돌리지 마,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라는 대사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작가 미상>의 시발점이며, 그 시작점은 유년 시절 ‘쿠르트’의 삶을 다루는 마지막 시퀀스다. 이모가 어디론가 이송되는 순간 어린 ‘쿠르트’는 한 손으로 본인 두 눈을 일시적으로 가렸다가 손을 내린다. 이때 ‘쿠르트’의 시점 쇼트에서 그의 시야 범위 내 풍경은 흐릿하게 혹은 반투명하게 처리된다. ‘쿠르트’는 이날을 계기로 본인이 경험한 흐릿한 프레임의 의미와 이모가 말했던 실재의 아름다움을 깨달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쿠르트’는 체제의 전환, 이주 문제, 미술 영역의 확장, 정체 등을 겪으며 분명 평탄한 길을 걷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 날 ‘교수 ‘안토니우스(올리버 마수치)’의 조언을 들은 후 ‘쿠르트’는 ‘ich(나)’라는 주체성을 회복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본인 경험을 살려 어떤 예술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서서히 윤곽을 잡기 시작한다. ‘쿠르트’는 미술 작품이 특정 정치 이념이나 예술 이념을 관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미술은 한정된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비일관성, 무제약성, 그리고 비확실성 속에서 운동하며 능동성에 도달해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양식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분절적이다. 또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구상 사진 회화를 할 때 익명의 사진을 기반으로 한 목적은 특정한 미술 및 정치 이념에 갇히지 않고 순수성과 실재성의 관계를 끌어내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함과 관련 있다.


“해석된 사진 이미지는 모사 과정에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친 이미지를 따라가는 작업 과정에서 나는 기계처럼 일할 뿐이다.”

    

출처: ABC NEWS


결국 당장 화가로서 어떤 회화를 해야 하는지 자각하게 된 ‘쿠르트’는 실제 게르하르트 리히터처럼사진과 초상화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을 거부하고, 기하학적 구도, 추상적인 터치, 그리고 흐릿한 윤곽선으로 포토 페인팅 작품을 하나둘 완성해 간다. 특히, 추상적인 터치와 흐릿한 윤곽선 덕분에 자기 삶을 스친 여러 순간을 오버랩시켜 하나의 화폭에 담길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이는 실재성과 실재 세계를 관통하는 법칙을 사유할 수 있는 깊이를 형성한다. 이뿐만 아니라, 붓 터치에 스며든 ‘나’라는 주체성은 진실을 화폭에 담아내되 진실을 화가가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제3자가 자주적으로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쿠르트’의 미술 작품 하나를 보며 화폭에 집약된 세상의 법칙을 목격할 수 있는 반면, 누군가는 ‘칼(세브스티안 코흐)’처럼 나치 정권 당시 타인에게 가했던 비열함과 몰인간성을 마주하며 제 발 저렸을 테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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