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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Jul 10. 2020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인: 영화 <니믹> (2019)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X WATCHA 온라인 상영관)


‘Nimic’은 루마니아어로,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과 ‘아무것(anything)’을 모두 지칭하는 명사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단편영화 <니믹> (2019)은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자 아무것이 되었을 때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우선, 전반적인 스타일을 살펴보면, <니믹>은 <송곳니> (2009), <더 랍스터> (2015), <킬링 디어> (2017), 그리고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8)에서 보여줬던 괴이함, 불편함, 변덕스러움 등을 재현한다. 아울러 음향을 포함한 테크닉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단편영화는 <킬링 디어>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광각 렌즈, 패닝 숏, 로우 앵글 숏 등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일반적인 상황을 낯설게 만들고, 갈피를 잡기 어렵게 만든다. 이와 같은 형식 아래, 뉴욕에 사는 한 첼리스트(맷 딜런)의 일상이 시작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안방 커튼을 젖히고, 부엌에서 달걀을 정확히 4분 15초만 삶아 먹는다. 아울러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합주곡과 신원 미상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이 음악과 음향은 1분 19초부터 진행되는 합주 연습 장면에서 나온 것으로, 장면의 플래시포워드처럼 의도적으로 앞당겨 진행되었고, 반복되는 단조로운 행위와 충돌하며 존재의 위기를 맞이할 첼리스트의 미래를 암시한다. 



합주 연습을 마친 첼리스트는 지하철에서 ‘Mimic(다프네 파타키아)’이라는 낯선 여자에게 “지금 몇 시인지 아세요?”라고 묻는다. 그 여자는 잠깐 침묵하더니 남자의 질문과 제스처를 되풀이한다. 심지어 그녀는 첼리스트의 귀갓길을 뒤쫓는다. 영화는 트래킹 숏으로 남자가 걸음을 재촉하며 집에 재빨리 들어가고, 그 여자도 뒤따라 집에 들어가는 상황을 그려낸다. 첼리스트는 본인의 존재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거실에 있는 세 자녀에게 ‘Mimic’과 본인 중에 누가 아버지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아냐며 대답을 거부한다. 이는 그의 존재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첼리스트의 아내(수잔 엘르)는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숏과 숏 간의 편집을 고려한다면, 두 사람에게 촉감 테스트를 제안하는 걸로 파악할 수 있다. 첼리스트의 아내는 평소처럼 자기가 안대를 쓰고 침대에 누우면, 다리 사이로 발을 집어넣으라고 한다. 첼리스트가 발을 집어넣었을 때 그녀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Mimic’이 발을 넣자, 그녀는 자기 발로 낯선 여자의 발을 쓰다듬는다. 이렇게 낯선 여자 ‘Mimic’은 첼리스트의 삶에 침입하고, 그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이제 ‘Mimic’은 남자의 일상을 이어서 반복한다. 물론 남자의 첼로도 이제 ‘Mimic’의 소유물이 되었다. 연주회 당일 ‘Mimic’은 엉망진창으로 첼로를 켜며 다른 연주가와 어우러지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어떤 티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아내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는 첼리스트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거나 아무것임을 이야기한다. 동 시간대 첼리스트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지하철을 이용한다. 근데, 그는 본인의 존재를 빼앗겼던 날 ‘Mimic’이 앉은 자리에 앉아 있다. 건너편에 앉은 소년이 그에게 “지금 몇 시인지 아세요?”라고 묻는다. 자리 위치 및 역할이 바뀌었을 뿐 이전과 동일한 상황은 다시 한번 누군가의 삶이 타인에 의해 침략당하는 일이 발생할 것임을 시사한다. 정리하자면, <니믹>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삶이 타인에게 침탈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가 아무것도 아니거나 아무것이 되는 것으로 취급을 받는 두려움을 단 12분 만에 묘사한 단편영화다. 더 나아가, 타인의 행위를 똑같이 따라 하는 ‘Mimic’이라는 캐릭터를 배치함으로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발전과 변화 없이 좀비처럼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문제를 지적하고, 전작들에서 그랬듯이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남긴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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