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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Dec 30. 2020

일랜시아, 그리고 공정과 호소: <내언니전지현과 나>

<내언니전지현과 나> (People in Elancia, 2020)


박윤진 감독의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는 MMORPG 게임 ‘일랜시아’를 소재로 한 르포르타주 영화로, 제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제24회 인디포럼 등에서 화제를 모았다. ‘일랜시아’는 1999년에 상용화되었지만, 넥슨 운영진에게서 버림을 받은 대표적인 망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매크로와 핵이 난무하는 ‘일랜시아’에는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남아서 이 게임 세계를 지키고 있다. 그중 한 명인 박윤진 감독은 본인을 포함해 다른 유저들에게 아직도 ‘일랜시아’를 떠나지 못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상당수의 게임은 과업 중심적인 양산형 게임이다. 매일 아주 많은 퀘스트를 완료해야 하므로 유저들은 타인을 배제하고 본인에게만 집중한다. 행여나 퀘스트를 수행하는 중에 다른 유저와 협력을 한다고 해도 이 관계는 휘발성이 강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인 분위기 등 모든 것을 서열화하려는 풍조가 게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이와 달리 ‘일랜시아’는 적정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정착하고 싶은 게임이다. 그래서 ‘일랜시아’ 유저들은 현실 세계에서 얻을 수 없는 만족을 찾고자 가상 공간을 떠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망해 가는 게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끝내 넥슨과의 공식 유저 간담회를 성사시킨다. 그런데 <내언니전지현과 나>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와 같은 사실이 아니라 가상 공간 때문에 현실에서 피어오르는 이상한 감각일 테다. 그리고 그 감각에서 두 가지 요점이 포착된다.



Ⅰ. 이상한 감각

‘일랜시아’의 유저들은 현실 세계보다 게임 채팅창에서 더 편안하게 감정을 표출한다. 아울러 평소에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쉽게 꺼낸다. 성별, 직업, 학력 등을 몰라도 되는 익명성에 기댐으로써 안정감을 느끼려는 회피성 정착일 수 있다. 하지만 ‘마님은돌쇠만쌀줘’라는 길드의 소속원들은 사적인 만남을 가질뿐더러 여럿이서 MT를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상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자기소개, 고기 파티, 사진 찍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오프라인에 끄집어내고 기념한다. 따라서 ‘일랜시아’ 유저들의 성향에 대한 추측은 틀렸다. 다만 추측이 틀렸을 뿐이지 이 지점에서 이상한 감각이 피어나는 게 아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볼 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등장하는 유저들 간의 대화 장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실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세상의 이슈와 가능성에 대한 창작자의 태도가 반영된 영화다. 그러므로 대화 장면에서 180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극영화에서 해당 규칙을 어긴 것처럼 어색함을 느낀다. ‘일랜시아’의 도트 그래픽 상황에서 진행되는 채팅은 2차원적인 감각을 일으키며, 동일한 방식을 인터뷰 장면에 그대로 적용해 180도 규칙을 파괴하고 평면적인 감각을 유지한다.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되고, 그 감각을 파고들면 ‘공정’과 ‘호소’라는 두 키워드가 보인다.



Ⅱ. 공정

일반적으로 공정성은 사회 구성원들이 불편 부당성을 지키고자 어떤 규칙을 정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공정하다는 것은 누구나 규칙을 어길 수 있다는 점을 합의하는 일이다. ‘일랜시아’는 매크로와 핵만 사용할 줄 알면 누구나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을뿐더러 균등한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즉, 이 가상 세계 속 공정성은 적정량의 물과 햇빛만 제공하면 성장할 수 있는 식물과 같다. 근데 여기에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일랜시아’ 유저들은 누구든지 매크로와 핵을 쓰는 게 평등이라고 말하지만, 불법 프로그램을 개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게임 세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을 겪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커뮤니티 소속감을 공동체성으로 혼동한 결과물로 보인다. 공동체성은 사회에 수용되지 않을까 봐 느끼는 두려움에서 파생된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같은 공간 속 무위의 시간을 버티는 일과 연관이 있다. 반면에 커뮤니티 소속감은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상태를 공유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아마도 ‘일랜시아’ 유저들은 커뮤니티 소속감을 공동체성으로 인지했기에 모순적인 공정성을 진정한 공정성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Ⅲ. 호소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IMF 시기와 관련 있는 여러 뉴스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박윤진 감독이 해당 시기를 소환한 사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의아한 대목이다. 분명 박윤진 감독을 포함한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원의 대다수는 1990년대 생으로 IMF 시기와 크게 접점을 이루고 있는 세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해당 시기를 겪은 세대는 현재 40대와 60대 사이의 연령대에 속한다. 그렇다면 가장 뜬금없고 이상한 대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일랜시아’가 IMF가 터지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이므로 박윤진 감독은 현재 기성세대가 사회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심정과 게임에서 대리만족을 얻는 상황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박윤진 감독은 사회문제를 직시하자 외치고 연대 의식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2016) 포스터를 본인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게임과 채팅 화면을 캡처하는 ‘가상 세계 속 기록 행위’가 <공동정범>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현실 세계 속 보관 행위’와 이어지므로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연대와 이해를 호소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언급한 ‘공정’과 ‘연대 호소’ 이외에 다양한 사회 이슈를 발견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따라서 이를 그저 망한 게임을 살리려는 여정에 관한 영화로만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논-픽션>(2018)처럼 영화를 토론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 해당 글의 원문은 아트렉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artlecture.com/article/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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