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ie Street Feb 06. 2017

<킥 애스> 리뷰

누구나 한 번은 히어로를 꿈꾼다

 <킥 애스>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B급 영화다. 높은 수위의 유머 코드, 잔인하고 거침없는 액션, 실소를 유발하는 ‘병맛’ 같은 연출은 B급 영화의 정석을 밀도 있게 구현해낸다. 더불어 적재적소에 삽입되는 사운드트랙은 관객들의 몰입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소재 역시 흥미롭다.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고등학생이 객기에 취해 잠수복을 입고 히어로가 된다니. 기존의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들이 익숙한 관객들은 어떠한 초능력도, 특별한 계기도 없이 히어로가 된다는 설정이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 내가 처음일까? 세상에 히어로를 흉내 낼 법한 별종은 넘치는데. 다들 학교와 직장에 얽매여 사는 삶이 그렇게 재밌나? 자신한테 좀 솔직해져 봐. 누구나 한 번쯤은 슈퍼히어로를 꿈꾸잖아?”  

   

 영화는 도입부터 B급 영화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관객들의 무의식을 자극한다. 현대인들은 평생 나이테처럼 포기와 체념을 삶의 궤적에 새기며 살아간다. 그 내면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수없이 꿈틀거린다. <킥 애스>는 매일 불량배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고등학생 데이브가 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스크린에 투영해 현대인들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린다. 그러나 심오한 해석이 가능한 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꼭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처럼 진지하고 철학적 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킥 애스>는 어디까지나 ‘똘끼 충만한’ B급 영화다. 진지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경박함이 가득하다. 그러나 스토리를 배제하고 선정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난잡한 B급 영화들의 실수는 저지르지 않는다. 원작인 만화책에 비해 선정성과 폭력성이 순화되고, 결말에 약간의 수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탄탄하다. 원작의 영화화 소식에 대한 원작 팬들의 화두는 두 가지였다. 킥 애스의 찌질함을 얼마나 리얼하게 묘사할 것인가. 그리고 잔인한 원작의 액션 씬을 어떻게 스크린에 복원해낼 것인가.

<킥 애스>만큼 원작의 감성과 디테일에 충실한 영화는 보기 힘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매튜 본 감독은 원작의 디테일은 살리고 복잡한 설명은 과감하게 버림으로써 원작 팬들과 일반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켰다. 킥 애스의 찌질함은 영화 시작 5분 만에 내레이션과 과거 회상 씬으로 동정심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증명됐다. 더불어 애런 존슨(킥 애스 役의)의 열연은 킥 애스의 찌질함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목소리 톤, 표정, 몸짓이 영화 속에서 원작의 킥 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감독은 대사, 스토리, 캐릭터에 묘사에 원작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90%의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결말에 ‘큰 한방’을 숨겨놓는 것은 모든 영화의 공통된 전략이겠지만 <킥 애스>는 작정한 것처럼 후반부의 액션 씬에 모든 것을 쏟아 붙는다. 원작의 디테일을 이어오던 매튜 본 감독은 이례적으로 후반부에 각색을 시도한다. 후반부의 액션을 압축적으로 다룬 원작과는 대조적으로 2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액션 씬을 이어나간다. 액션 씬의 전개와 스타일 역시 원작과는 다르다. 더 강렬하고 유쾌하다. 비록, 킥 애스의 액션 씬이 원작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그가 보여주는 ‘큰 한방’은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여준다.

 원작 팬들은 <킥 애스>의 메가폰을 잡은 것이 매튜 본 감독임을 진정으로 감사해야 한다.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의 경우 한정된 러닝 타임 동안 코믹스의 복잡한 세계관을 담아야 한다. 따라서 감독들은 표현 방식에 앞서 항상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을 것인가’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같은 초록색 코스튬을 입은 옆 동네 히어로 <그린랜턴>은 그 잘못된 예다. 다행히도 매튜 본 감독은 B급의 정서에서 킥 애스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으로 복원했다.

 사실, 매튜 본 감독은 <킥 애스> 이전에는 영화계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감독은 아니었다. 하지만 <킥 애스> 이후 그가 맡게 된 차기작이 흥행에 성공한 <킹스맨>, <엑스맨>, <독수리 에디> 임을 감안하면 <킥 애스>가 매튜 본의 이력에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킥 애스>에는 아무런 능력도, 빽도 없는 찌질한 고등학생이 얻어터지며 히어로가 되는 과정과 후반부의 폭발과도 같은 액션 씬이 치킨과 맥주의 조합처럼 스크린에서 완벽하게 어울린다.

 분명 <킥 애스>는 B급 정서와 19금 유머 코드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값싼 웃음으로 환원될 영화는 아니다. <킥 애스>는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아무 능력도 없지만 두들겨 맞고, 조롱당해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데이브의 모습에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숨기고 있지는 않나. 잊고 살아왔건, 포기하고 살아왔건 오늘은 한때나마 진정으로 간직해왔던 꿈을 상상해보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새기자 - 체 게바라     


매거진의 이전글 <아비정전>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