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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Oct 08. 2018

[부산국제영화제 특집 리뷰] 그림자가 사라진 날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누군가의 삶은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제목: 그림자가 사라진 날(Yom Adaatou Zouli) 2018 作

감독: 소다데 카단

#1시간 31분 #시리아 내전 #다마스쿠스 #전쟁 #인간 #상실 #공포 


 현실과 역사에 대한 비판 어린 시선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거두지 않고 유지하는 영화들이 있다.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사회 고발과 현실 직시의 기능을 긍정하는 측면에서 나는 그러한 류의 영화를 존중하고 또, 응원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그림자가 사라진 날>은 마땅히 응원하고 싶은 영화임을 밝힌다. 작품성이 영화의 주제의식 및 시선과는 별개로 논의되는 일부 비판 영화들과 달리, <그림자가 사라진 날>은 작품성과 주제의식의 퀄리티를 동일하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스크린 속 비극은 스크린 속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시리아 내전이 가장 맹렬하게 진행됐던 2012년의 다마스쿠스. 생존보다 죽음이 익숙한 이곳에서 생활에 필수적인 수도와 가스가 원활하게 공급될 리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고자 소다데 카단 감독은 영화의 서두에 주인공 사나(모)가 수도 공급 중단으로 당장 작동돼야 하는 세탁기가 작동하지 않자 칼릴(자) 앞에서 혼자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긋지긋한 인생. 이 쓰레기 같은 인생. 그것은 사나의 이야기만도, 영화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현존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서두에 사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필수적인 생활 요소의 부재'는 동시에 서사 전개의 발단으로 작용한다. 이는 반군이 모든 가스 배급 분을 가져가 가스를 배급받지 못한 사나가 위협을 무릅쓰고 한 남매와 다른 지역으로 가 가스를 배급받으러 간다는 전개로 이어진다. 사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필수적인 생활 요소의 부재가 의미하는 바는 사랑하는 아들 카릴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사나의 유일한 행동 근거는 모성애다. 한 어머니로서, 한 인간으로서 사나에게 부과되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림자의 모습은 항상 위태롭다.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꼭 사라질 것처럼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소다데 카단 감독은 이처럼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 재앙이 한 개인의 삶에서 무엇을 앗아갈 수 있는지 그 '상실'에 대해 말한다. 소다데 카단 감독은 현존하는 누군가가 겪고 있을 법한 실제적 사건과 '전쟁터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림자를 잃는다'라는 설정을 병치시킨다. 그럼으로써 주제의식은 더 명확해진다. 영화 속 누군가는 그림자를 이미 잃었고, 누군가는 그림자를 잃어간다. 그러나 소다데 카단 감독은 그림자가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는다. 상실하게 되는 이유와 상실하게 되는 것들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까.

 그림자는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형성된다. 사라지는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인간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떠한 종류의 상실을 겪음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것은 실질적 의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빛을 반사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사나와 함께한 남매 중 과거에 형이 고문을 받다가 죽는 것을 벽 하나를 두고 들을 수밖에 없었던 남자는 이미 그림자를 잃었고 여자는 그 남자가 사라졌다가 반군의 총에 맞아 시신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사나의 눈앞에서 그림자를 잃는다.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이야기된다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이들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은 어지럽다. 어느 한 군데 고정되지 못하고 덜컹거리고 때로는 크게 한 바퀴 원을 그리기도 한다. 이들이 처한 공포와 혼란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간접적으로 체험된다. 그 속에서 사나는 끝없는 악몽 속에 갇힌 느낌이라고 말한다. 힘없이 내뱉어진 사나의 말에는 절망, 체념, 분노 여러 감정이 혼재돼 있어 어느 하나의 감정만을 골라내 설명하기 어렵다. 위험에 빠진 사나를 도와준 한 마을의 구성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미리 무덤 자리를 파놓고, 폭격을 피해 욕실에 모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사나는 우여곡절 끝에 가스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함께한 남매는 그림자를 잃은 채 그녀의 곁을 떠났다.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가스를 켜 놓은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더 이상 표정이 없다. 그 무표정함은 스크린에 대고 소리 없이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영화의 서두에서 사나를 괴롭혔던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긋지긋한 인생. 이 쓰레기 같은 인생. 영화의 마지막, 그녀 역시 그림자를 잃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칼릴에게 말한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아들을 향해, 다음 세대를 향해 괜찮다는 연약한 희망을 속삭이는 부모의, 기성세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삶은 나아가야 하고 또 나아갈 것이다. <그림자가 사라진 날>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적 설정을 조금만 걷어내면 틀림없이 누군가의 삶이기도 할 이 서사를 극장에서 편하게 앉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어렵다.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랑말랑 영화들에게 예술성을 부여하고 자족하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스크린 속 세상은 때로는 한없이 넓게 느껴지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좁게 느껴진다.


정식 연재: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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