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철학과 디자인
세종 28년.
그해 겨울, 세상에 없던 글자가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었죠.
이름부터가 특별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닌, 한 나라가 글자를 만든다는 일.
지금도 드문 이 시도는
당대에도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훈민정음을 ‘위대한 창제’라 부를까요?
단순히 새 문자를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철학, 사람을 향한 마음, 그리고
시대를 앞선 디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 서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는 단지 언어의 차이를 설명한 문장이 아닙니다.
이 문장은 세종이 ‘왜’ 글자를 만들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말해 줍니다.
당시 백성은 말을 하되, 글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문자, 한자는 배우기 어렵고, 쓰기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글을 모른다는 건,
세금 고지서도 못 읽고, 억울해도 소장 한 장 못 쓰며,
죽기 전 유언조차 남기기 어려운 삶을 의미했습니다.
세종은 바로 그 삶을 바꾸고 싶었던 겁니다.
훈민정음은 지배를 위한 언어가 아닌,
‘함께 살기 위한 문자’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위대했습니다.
훈민정음은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그 구조와 형태 안에는 놀라운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초성, 중성, 종성.
이 세 가지 요소로 조합되는 글자 구조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코드 체계와도 유사합니다.
가로, 세로 정렬과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모아쓰기 방식은
공간 효율과 시각적 미학을 모두 갖춘 디자인이었죠.
특히 초성 ‘ㄱ, ㄴ, ㅁ, ㅅ, ㅇ’은
사람의 발성 기관을 본뜬 기하학적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히 따라 그린 것이 아니라,
소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였습니다.
중성과 종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ㅡ(땅), ㅣ(사람)’의 삼재(三才) 철학을 담아,
자음과 모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훈민정음은 자연과 사람, 세상의 원리를 반영한 문자였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하루 밤낮이면 읽고 쓸 수 있다.”
그 어떤 문자가 이처럼 배움의 민주화를 꿈꿨을까요?
훈민정음은 속도와 정확성을 모두 갖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표현을 가능케 한 정보의 언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 노래도, 농사 지식도, 질병에 대한 설명도
모두 한글로 쓰이며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만큼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완벽했습니다.
한글은 ‘완성된 문자’이지만,
동시에 ‘열린 문자’입니다.
새로운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손글씨에서 타자기, 컴퓨터, 스마트폰 자판까지
어떤 환경에서도 유연하게 살아남습니다.
이는 곧 훈민정음이 단순한 문자 디자인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철학적 언어’였음을 보여줍니다.
훈민정음이 위대한 이유는
‘어떻게 만들었느냐’보다,
‘왜 만들었느냐’에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도 자기 뜻을 말할 수 있기를,
읽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자기 목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기를.
그 마음이 한글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글자는 도구이지만,
어떤 도구는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시대를 넘어
후대의 운명을 바꿉니다.
훈민정음은 그런 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함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한글’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