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2018)
한때, 그리고 여전히 일베에서는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드러나듯 북한군 광주 개입설은 유사과학의 형태로 객관성과 신빙성을 흉내 냈다. 이를테면 그날의 광주를 담은 사진에서 무장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북한의 수뇌부 얼굴들과 닮았다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다큐 속 변호사가 말하듯 그저 비웃고 넘어갈 정도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베는 이 헛소리를 과학적 분석으로 포장했다. 점과 선을 들이대면 과학적 분석이 되는 냥, 이들은 광주의 시민의 얼굴들을 북한의 수뇌부의 얼굴들과 연결해내는 어처구니없는 작업을 시행했다. 어떤 이들은 과학을 모사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작업을 믿었다. 점과 선을 그저 갖다 댔을 뿐인데도, 근거 없는 작업은 정말 얼굴이 닮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키웠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인다는 전언이 작용한다.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의 권위와 과학을 모사한 방법론이 더해져 위험한 믿음이 형성됐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얼굴들에 점과 선을 덕지덕지 덧입히니 얼굴은 진짜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작업에 근거하면 일본인 개입설, 중국인 개입설 등도 가능하다.
일베는 이런 작업을 통해 광주 시민들을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으로 호명했다. 이름하야 광수였다. 이에 따르면 첫 번째 광수를 비롯 총 백여 명의 광수가 그날 광주에 있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무장한 시민군, 다른 쪽에서는 광수라 부르는 북한군, 이들은 누구인가. 그래서 <김군>은 추적 저널리즘에 따라오는 장르적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사진에 기반해 정체,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 말이다. 추리 영화처럼 추적 저널리즘은 시청자, 관객의 흥미를 돋운다. 그러나 추적 저널리즘은 위험하다. 주목도를 높이지만, 자칫 사건의 진실을 재미에 함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군> 역시 얼마간 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군>의 제작진은 촬영을 해내는 과정 속에서 이를 알아챘다.
<김군>의 발단은 일베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반박하는 것이었다. 유사과학으로 무장한 그들의 논리를 박살 내는 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들이 진짜 시민임을 증명해내는 것, 즉 정체를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광수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을 찾기 위해 다큐는 광주의 사진 기록과 증언 기록을 샅샅이 확인해나간다. 생존 시민들을 인터뷰하고, 실제 사진 촬영 기자를 찾아내 정황을 묻는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서 차츰 "광수"들의 정체가 엿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의 진짜 정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어떤 기대가 다큐를 밀고 나간다. 그 과정에서 사진 기록이 갖는 힘 역시 강력히 드러난다. 추적의 중간에 자리한 몽타주 시퀀스는 그런 의미에서 유심히 살펴볼만하다. 같은 자리에서 전남도청 앞 분수를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나열되면서 그 날의 현장이 소환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 몽타주를 통해 마치 하나의 영상처럼 생동성을 획득해낸다. 사진 기록이 영상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사진 기록의 힘이 극대화된 시네마의 순간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불온한 생각이 든다. 저 영상의 생동성은 파편화된 사진들이 이어지면서 이뤄낸 착시라는 것이다. 저 날의 광주가 영상처럼 소환되지만 여전히 그것은 과거에 박제된 사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진기록으로 획득된 유사시네마는 분명 감흥을 일으키지만, 그 감흥은 착시 위에 기반해 있다. 착시라는 점에서, 이 어마어마한 몽타주는 그보다 앞서 제시된, 전혀 다른 극점에 있는 착시와 통하게 된다. 시민군을 광수라고 일컫는 사람들 역시 어떤 착시가 작용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이 시퀀스는 <김군>에서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떤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사진 기록과 생존자의 정황에 근거해 <김군>은 서서히 "광수"의 정체에 접근한다. 그리고 사진 속 시민군을 본 것 같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시 한번 불온해지자면, 이러한 작업 역시 ‘닮은 얼굴’에 기반해 진행되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추적이 진행되는 중에 <김군>은 새로운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김군". 그 날을 기억하는 생존 시민은 사진 속 시민군인을 김군으로 불렀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사실이 (재)발견된다. 사진 속 등장하는 시민군들이 넝마주이였다는 사실 말이다. 김군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넝마주이들이라는 새로운 정체들의 등장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나 실상 하나의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바로 이제까지‘이야기되지 않았던 혹은 이제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점이다.
<김군>의 성취는 바로 여기에 있다. 광수(더 이상 이 이름을 적고 싶지도 않기도 하다)들에게 그들 본래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 광수라는 오염된 이름을 벗겨 내는 것. 그래서 제2의, 제3의, 제100의 광수들로 불리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 주는 것은 <김군>의 탐사 추적이 이뤄내는 성과다. 그렇게 찾게 된 이름들은 이강갑, 최진수였다. 이름을 되찾아 주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교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광주폭동이라는 잘못된 이름에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인 것처럼 말이다. 잘못된 이름을 폐기하고 김군이라는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남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발견’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박제된 무장한 시민군들이 38년이 지났음에도 무지와 미지의 영역에 놓여있다는 것은 광주의 그날이 박제된 역사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추적을 통해 획득된 또 다른 성과는 김군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이들 무장 시민군들이 넝마주이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시 한번 ‘발견’된 이야기다. 518 이전에 이들 넝마주이들은 고아의 신분으로 자라면서 광주의 변두리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계엄군이 그들이 사는 곳을 점령하자 넝마주이들은 돌아갈 수 없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로 전달된다. 광주의 그날에 고등학생, 대학생, 아주머니들이 돌아갈 집이 있었던 것과 달리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김군>은 광주의 그날에 계급적인 것을 드러냄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더해나갈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더해진 이야기는 광주의 그날을 결코 훼손하지 않는다.
당시 광주시민들이 그러했듯 이들 역시 도처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목불인견의 인간다움으로 총을 들고 시민군이 되었다. 이들이 총을 든 것은, 다른 광주시민들 역시 그러했듯, 민주주의와 애국이라는 거창한 사명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인간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본능적 ‘정의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 넝마주이들의 이야기와 무장 시민군이 도시를 누비는 영상 기록이 함께 나오는 순간들을 보면서 과장하고 싶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의 사람들은 광주시민이라는 정체성 하나와, 인간다움이라는 정동 하나로 평등을 이뤄냈고, (영상 기록에서 느껴지듯) 자유를 실현해냈다. 잘못된 국가권력에 맞서 그날의 사람들이 이뤄내고 보여낸 것은 이념이라는 고체적 형태 이전에 맹아처럼 존재하는 평등과 자유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한 번 더 나아가자면, <김군>은 이 새로운 이야기와 과거 영상기록을 통해 광주의 그날에서 본능적 인간다움이 민주주의의 바로 밑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내 호명해내고, 새로운 정체성을 등장시켜 놓은 것이야말로 <김군>의 성과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둘은 더하기의 방법론으로써 광주의 518에 새로운 정체성을 더해내고 새로운 이름들을 더해낸다. 이는 다시 한번 그날의 역사가 박제될 수 없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서 진행되어야 함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는 작업이다. 여전히 광수라는 이름이 횡행하고 있는 태극기부대 장면이 등장함으로써 <김군>은 518이 다시금 이야기되어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낸다. 그리고 <김군>은 김군이라는 이름과 넝마주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까지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 보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들 역시 의미심장하다.
사진 속에 박제된 무장 시민군들이 넝마주이라는 사실이 증언을 통해 드러났을 때, <김군>은 오늘날 넝마주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의 넝마주이들 중에는 넝마주이였던, 그리고 무장 시민군이었던 사람들이 존재해 있었다. 그날 이전에 변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오늘날 변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김군>이 추적을 하기 전까지, 광주의 그날 위로 드러나지 않은 채 역사의 표면에 포착되지 않았다. 변두리에서 다시 또 변두리로 돌아간 이들의 정체가 계속 묻혀있었다는 것에서 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구태여 이를 설명할 말을 찾자면, 그것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역사, 그로 인해 무던히 흘러가는 시간이, 개인을 끝도 없이 묻어둘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들의 한 때 정체라는 것은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묻혀 있었고 그것이 나는 끔찍하게 무섭게 느껴졌다.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순간들을 비추고, 자신들의 이름을 가진 채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무장 시민군이었던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부근에서 <김군>은 추적 탐사라는 장르적 관습을 거둬들인다. 그것은 넝마주이 시민군 생존자의 인터뷰로부터 시작된다. 시민군의 정체를 추적해나가는 제작진을 향해 인터뷰이는 말한다.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응해 진짜라고 말하는 것도 다 똑같은 것"이라고. 사진 속 시민군의 정체를 찾아낸들 그것은 결국 지만원을 비롯한 일베의 논리에 갇히고 마는 것임을 인터뷰이는 울분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와 같이 말한다. 왜 피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진짜임을 증명해야 하냐고.
<김군>이 장르적 관습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것은 곧 다큐가 ‘김군 찾아 나서기’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과 연결된다. 김군을 찾아낸다면야 그것은 그 나름대로도 충분한 성취일 테지만, 그리고 얼마간은 다큐는 그것을 실제로 행해내고 있지만, 그것은 인터뷰이가 지적하듯 일베의 논리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찾아내지 못한다면야 그것은 정말 저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일 뿐이고, 설사 찾아낸다 한들 그것은 성취에 갇혀버려 오히려 사건이 종결되며 다큐 역시 여기에 그치고 말 수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김군>은 이 다큐만으로 이야기가 종결되기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인터뷰이의 등장과 함께 <김군>은 전환점을 맞는다. 그 전환점이란 것은 다시 말하지만 제1의 광수, 김군 찾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 김군을 찾아내는 것보다도 <김군>은 앞서도 말했듯 이제껏 주목되지 못한, 그래서 마치 새롭게 발견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의 의미를 짚는 것에 시간을 할애한다. 김군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기록의 부재와 증언의 부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군을 찾아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잘못된 국가권력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국가권력은 사람들을 실제로 죽였고, 이 시체들을 어딘가에 버려뒀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사망자로 처리되지 못한 채 행방불명된 상태로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점에서 역시 광주 518은 박제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실제로 김군의 정체에 거의 다다를 것으로 보이는 말미에 <김군>은 더 이상 김군 찾기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김군>은 인터뷰의 그 말에 부응하듯 이 작업의 한계를 스스로 간파하듯 추적을 거둬들인다. 물론 추적의 당위성은 태극기부대들과, 518을 부정하는 전두환의 자서전을 통해 획득될만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김군>은 추적을 멈춰낸다. 추적을 대신해 채워지는 것은 다시 또 시네마적인 순간이다. <김군>은 이름이 밝혀진 이강갑, 최진수, 청문회에서의 증언자를 영화관에 불러들인다. 광수라 불렸던 이들이 영화관에 만나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고 악수를 나눈다. 그날의 소환. 다시 또 연대의 순간. 38년간 묻혀있다 다시 드러난 생존 시민군들이 영사기의 빛을 통해 투사되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리고 <김군>은 스크린을 보고 있는 이 생생한 증거인 생존자들을 비춘다. 아마 그들이 보고 있었던 것은 그날의 사진이었으리라. 이것이 시네마적인 이유는 비단 그들이 놓인 공간에 있다기보다 박제된 사진 속 인물들이 그것을 뚫고 <김군>의 카메라에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제된 것이 아니다.
<김군>의 마지막 장면은 전 전남도청의 분수를 응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변주처럼 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마지막 장면은 <김군>에서 가장 시네마적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사진 몽타주의 변주처럼 보인다. 기록의 힘이 극대화되고 있는 그날을 포착해낸 사진들은 몽타주를 통해 생동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박제된 것이었고, 어쩔 수 없이 착시적인 것이었다. <김군>의 추적이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그날을 포착한 흑백사진 몽타주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군>이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추적에만 매몰되지 않는 것은 광주가 박제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군>의 마지막 장면이 오늘날의 분수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박제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분수가 <김군>의 마지막 장면을 채우고 있다. 본질적으로 영상의 생동성이라는 것이 사진의 프레임을 더해냄으로써 획득되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마지막에 등장한 지금의 분수 장면은 이제껏 이야기되던 광주에 더 많은 이야기를 더해낸 <김군>의 성취가 바로 작용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실재하는 분수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큼, 박제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음을 <김군>은 다시 한 번 드러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