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단편소설
오늘도 사람들은 향미를 투명인간처럼 지나쳤다.
하얀 피켓을 든 그녀는 매일처럼 병원 앞, 바람 많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향미는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큰 수확은 없었다.
불 꺼진 집에 들어가서도 그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녀는 철저한 고독 속에 살고 있었다.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
.
.
처음 우울증이란 판정을 받고 향미는 딸에게 핀잔을 주었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엄마는 살면서 안 힘든 줄 알아? 세상 사는 게 쉬운 사람이 어디 있어. 하루하루 다 버티면서 사는 거지.”
그렇게 퇴사를 하고 싶어 하던 딸을 구렁으로 밀어 넣은 건 자신이었다.
어두컴컴한 집의 불을 켜고, 겨우 물에 밥을 말아 김치를 걸쳐 먹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건 견딜 수 있는 고통이었다.
견딜 수 없는 건, 고요한 집 안에 스며 있는 딸의 기척이었다.
집안 곳곳엔 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엄마, 난 이제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닐까? 회사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너 같은 애가 어떻게 여기 왔냐고…. 그런 말 듣는 건 참을 수 있거든? 근데 참다 보니까 내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어떤 놈들이 우리 딸한테 그런 소리해! 그거 다 신경 쓰지 마. 그런 놈들이 덜 떨어진 거야.”
“그냥…. 나 다 그만두면 안 될까?”
“그럼 뭐 하려고? 요즘 직장 얻기가 쉬운 줄 알아? 취직 좋은 곳에 해놓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그래도…. 이러다간 나 진짜…. 없어질 것만 같아.”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러면 팀도 바뀔 거고, 밑에 후배도 들어오고. 응?”
향미는 마음 같아서는 회사에 찾아가 뒤집어엎고 싶었다.
그저 타이르기만 하면 좋게 끝날 줄 알았다.
워낙 딸아이를 품에 안고 키워서 그렇다.
담금질하면 강하게 클 거다.
생각했다.
병원을 찾아갔을 땐, 의사는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믿었다.
딸은 괜찮다고만 했다.
이제 나아졌다고….
첫 번째로 속은 날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딸이 자해를 시작했고 향미는 더 이상 딸에게 참고 있으라고 할 수 없었다.
몇 년을 고생해서 들어간 그 회사를 빨리 나오라 했다.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서 뒤집어엎으려 했지만, 당장 필요한 건 딸을 살리는 일이었다.
최소한의 일만 하고 딸을 케어하는데 힘과 시간을 쏟았다.
딸의 방문은 언제나 굳게 잠겨 있었다.
향미는 눈치를 보며 딸이 그 방에서 나와주길 바랐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 정신력 정신력 말하는데…. 그럼 암 걸린 환자는 정신력이 부족해서 완치가 안 되는 거야? 그게 말이 안 되잖아. 내 마음은 갈가리 찢기고 부서졌다고….”
“……..”
“그러니까 강요하지 마! 나 매일 그것들이랑 싸우고 있어.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그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날 괴롭혀! 엄마가 알기나 해?”
딸의 절규는 향미의 가슴에 내리 꽂혔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딸이 예전처럼 돌아올까….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될 거라 실낱같은 희망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딸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기적처럼 방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치료가 진전이 있다고 했다.
향미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결국 우리 딸이 해낼 줄 알았어! 그동안 잘 싸워줘서 고마워. 엄마가 너무 몰라서 그랬어.”
“아니야. 모를 수도 있지. 나도 미안해. 엄마. 이런 딸이라서….”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이제 보니 우리 엄마 나이 들었다. 내가 방에만 있는 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어. 내가 미안해.”
아팠던 딸이 향미를 끌어안았다.
예전 같은 따스함이다.
향미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드디어 긴 터널을 지나왔다는 안도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걸 그녀는 꿈에도 몰랐다.
.
.
.
향미는 아침이 싫었다.
다시 해가 뜨면 그녀는 자신의 전쟁터로 갑옷을 입고 나가야 했다.
그 마음엔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메울 수 없는 좌절감과 딸이 치료가 호전되고 있다고 말한 의사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
그녀는 그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된다면 단 한순간도 멀쩡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발끈을 동여매며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곧 이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사실 이제 그녀도 지쳤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 나설 준비를 끝마치고선, 그날에 읽어두려던 편지를 서랍에서 꺼냈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편지를 열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 향미 씨.
나 정말 열심히 싸웠어. 그런데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어.
내가 힘들 때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 그때는 사실 조금 미웠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까 엄만 그럴 수밖에 없었겠더라.
의사 선생님도 내 말 잘 들어줬어.
그런데 나 도저히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르겠어.
약도 잘 먹고 상담도 열심히 받았는데, 불현듯 고통들이 짓눌러.
아마 죽어야만 구원받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엄마.
이거 엄마 탓도, 다른 사람 탓도 아니야.
그러니 내가 없더라도 너무 불쌍하게 살지 마.
나 진짜 열심히 싸웠어….
먼저 떠나는 불효년데도 참 바라는 거 많은 욕심쟁이지?
이기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미안해. 엄마랑 좋은 시간 보냈으면 했는데….
늙어가는 우리 엄마 내가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중에 우리 만나.
사랑해.
편지지 위엔 눈물로 번진 잉크자국이 많았다.
딸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향미는 피켓을 벗어던졌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 이제 울지 말고…. 피켓은 내려놔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