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를 소개합니다
우리 집은 저수지 밑바닥에 있다. 농장도 마찬가지다.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무엇이 나룻배의 잔해이고 무엇이 농장의 잔해인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물 밑에 있다.
미국 콜로라도의 아이올라는 댐 건설로 수몰된 옛 마을이 배경이다. 여기서의 기억을 추억하는 주인공 빅토리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빅토리아는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 빈자리를 채우며 살았다. 그 삶은 소녀가 버텨내기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장 일을 해야 했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노스 로라 사거리에서 꾀죄죄한 이방인 하나를 만난다.
“저기. 여기가 여인숙으로 가는 길이 맞나요?”
이방인은 여인숙 위치를 알게 되었다. 묘하게 눈길이 가는 남자였다. 하필 가야 하는 방향이 같아, 이방인은 앞서 걷고 빅토리아는 그를 따라 걸었다. 천천히 걸음을 맞추며 걷게 된다. 그의 걸음이 느려지자 그녀도 속도를 늦춘다.
우리가 마치 보이지 않는 줄에 묶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의 발걸음도 느려졌다.
마침내 뒤를 돌아본 그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짧은 대화를 통해 통성명을 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윌슨 문, 인디언 혈통인 그는 탄광에서 일하다 도망 나온 사람이었다.
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혈통 때문에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유쾌한 남자였다. 윌과의 사랑을 통해 수동적인 빅토리아는 능동적인 사람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인디언 혈통인 그를 배격하였고 도둑 누명까지 쓰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산에 버려진 산막으로 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완전히 떠나지 않은 이유는 빅토리아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사랑을 싹틔웠지만, 빅토리아의 남동생 세스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게 된다. 이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영원하지 못한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며 이야기는 새로운 막을 맞이하게 된다. 처절한 그녀의 삶은 로맨스에서 드라마로 변화된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빅토리아의 삶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오래된 필름을 보는 것과 같았다. 때로는 빅토리아의 삶이 어디까지 처박힐지 숨죽이며 볼 정도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입체적인 캐릭터들, 장면이 그려지는 세밀한 묘사, 현실 지명을 사용해서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 등이 있다.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단어는 ‘남겨진 사랑’이다.
사고로 부인을 잃은 빅토리아의 아버지와 그녀의 자녀들.
같은 날 사고로 부인을 잃은 빅토리아의 이모부.
이방인 세스.
후반부에 등장하는 여성 등.(더 이상은 스포가 될 수 있어 이야기를 않겠다.)
각 캐릭터들이 입체적일 수 있는 이유는 ‘남겨진 사랑’에 대한 그들의 서사와 반응 덕분이다.(이는 책을 통해서 확인하기 바란다.)
‘남겨진 사랑’은 ‘결핍된 미완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문득 첫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첫사랑을 만난 건 중학교 3학년이었다. 여름이었다.(꼭 한 번 써보고 싶었다.)
한 살 연상의 그녀는 고등학생이었고 우린 짧게 만났다.
점심에 그녀의 학교와 이어진 계단에서 만나는 일, 저녁에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에 앉아한 대화, 사소한 일들을 나눴던 문자 등.
짧은 만남에 특별한 일들을 하진 않았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결핍된 미완의 사랑’은 소중한 추억이었지만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물론 이렇게 무덤덤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본다면 아쉬운 점도 많다. 좀 더 어른스러웠으면, 좀 더 그녀를 늦게 만났으면 등.
하지만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은가. 결국 중학교 3학년의 백경을 귀엽게 바라볼 수밖엔 없었다.
사람이 아닌 대상에서도 ‘결핍된 미완의 사랑’은 일어날 수 있다. 나의 어릴 적 꿈이라든지,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이라든지, 지금은 무덤덤하게 잊어버린 추억이라든지.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작고 작은 사건이 모여 분기점을 맞이했을 테고, 우리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내가 삶이라고 불러온 이 여정도 잠겨버린 이 강물과 비슷하지 않은가. 저수지로 만들어놓았는데도 온갖 걸림돌과 댐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고 흐르는 이 강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그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가지고 계속 흘러가는 이 강물이 내 삶과 같았다.
삶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과도 같다. 우리는 특정한 사건을 통해서 변화된다. ‘미완의 결핍된 사랑’이 때로는 물길을 틀어버리기도 하고, 평범한 나날들이 흘러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사랑이든, 슬픔이든, 무언가로 인해 곡면으로 흐른 삶은 확인하게 된다.
중요한 건 무얼 하든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히 어떻게 해야 좋다는 이야기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내 이야기로 마치자면, 흘러가는 이 시간을 소중히 하면 좋겠다. 뒤돌아보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 다음 함께 나누길 희망해 본다.
그대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덥다.
여름이었다.
이 책은 작년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이달의 책으로 추천받아 읽었다.
셸리 리드는 콜로라도 주민으로, 웨스턴콜로라도대학교에서 30년 가까이 학생들에게 글쓰기, 문학, 환경 연구 등을 가르쳤고, 환경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공과목을 창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