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돌덩이

한 아이가 티비를 본다

by 밤의 작가 M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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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티비를 본다


이른 아침. 밥을 먹는 자리에


나오는 뉴스엔


판자촌 집들이 보인다


겹겹이 붙어 있는 집들을 철거하는

포크레인과 사람들 뒤로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할머니부터 어린 손자 중년의 남자들은

싸움에 지쳐 무너져 가는

집들을 바라보며

울분을 터트리다 흐느껴 운다.


그 아이는 밥을 먹다 다짐한다

언젠가 내가 이들을 위한

집을 지어주고 싶다고


그렇게 그 아이의 어릴 적 꿈은

건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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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에 난

인문계였음에도 건축이 하고 싶어

학원을 다녔다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의 도움이었을까


주말이나 방학땐 건설현장에

나가 알바를 했다


아침 7시까지 가면 소장님이

나에게 손잡이가 달린 양동이

두 개를 준다


그 당시엔 고층 빌딩 현장엔 작업자들

화장실이 없어 소변통을

나르는 일을 했었다


7층부터 오르락내리락하던

열여덟의 나는

오줌통을 비우러 계단을 내려갈 때면

완장을 찬 현장기사에서

욕을 먹기 일쑤였다


“야인마 똑바로 못 들어?”

콘크리트는 염분에 약해서

조금이라도 흘리면

여지없이 호통을 치곤 했다


그 당시엔 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할 겨를 없이 어떻게 하면 덜 흘릴까

오전 10시 정도에 새참을 사오라 하면

고된 일인 만큼 소주를 꼭 사오라 하셨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그렇게 빵과 우유에도

술을 드시곤 했다


얼마나 날랐을까 어느덧 해 질 녘

네다섯 시쯤 되었을까

한 아저씨가 쉬었다 하라며

나를 부른다


아직 콘크리트만 있고

창은 모양만 있을 때

창 곁에 서서 바깥을 바라본다

빌딩 아래로 사람들이 보인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횡단보도에 한 아주머니가 서 계신다

초록불에 건너가는 아주머니 반대편엔

내 또래 아들들이 걸어간다


허름한 옷에 한쪽 손은 주머니에 넣고

우리 할머니가 자주 신던 발등이

가려진 고무신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신지 절름 발로

반대편 아이가 아들이신지

얼굴엔 반가움이 보인다


아들은 창피한지 친구와 그냥 지나가는 듯

하다가 엄마의 부름에 옆을 보고 멈춘다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꼬옥 쥐고 있었는 듯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아들

손에 쥐어준다


멀리서 보는 데도 만 원짜리가 보인다


해 질 무렵 노란주황빛의 노을이 건물들

사이를 지나 횡단보도쪽

그 아주머니와 아들을 향해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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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어머님은 하루 종일 일해서

3만 원을 겨우 손에 쥐면

아들 줄 생각에 저렇게 기뻐하는 데


저 아들은 저 돈 가지고

오락실을 가거나 친구와 노는데 쓰겠구나,


나는 아마 이때부터 삶에 대한 가치관이

누구의 삶도 가볍게 봐선 안된다로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아들은 옆에 친구가 보기에 자신의 엄마가

창피해선지 부끄러운 듯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아들의 심정을 아는 듯

아주머니의 웃는 얼굴 속에서

미안해하는 게 보였다 그렇게 웃으며

손에 쥐어주고 얼른 자리를 피하듯

불편한 다리에도 빠르게 걸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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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우리 엄마 생각에

나도 저런 아들이었구나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의 중학생 시절


학교 앞에 육교를 건너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정류장 옆으로 할머니들이 줄줄이 앉아

나물이나 멸치 같은 걸 팔고 계셨다


우리 집은 시골이어서

농사도 짓곤 했는 데

집 옥상에 올라가면 엄마가 말려둔

고추를 보곤 했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정류장에 갈 때 줄줄이 앉은

할머니들 옆으로

눈에 익은 차양모자가 보였다


설마 우리 엄말까 싶어

아예 보질 않았었는데..


그때 난 엄마 같아서 집에 온 뒤에

엄마에게 짜증을 냈었다


왜 그런 걸 우리 학교 앞에서 파냐고


그날 엄마가 해준 얘기에는

모우야 미안하다 엄마가 고사리랑

건고추 좀 팔아본다고 나갔는 데

안 그래도

너 학교 끝날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다고

옆에 할머니가 아들 기죽는다고 오기 전에 얼른 나한테 맡기고 가라고 했었는데 네가 일찍 나올 줄은 몰랐다고 아휴 어쩌냐 미안하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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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아줌마를 보던

그때의 나는 울먹였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 그때 얘길 꺼내며

엄마 미안해라고 했을 때

엄마는 괜찮다고 다 잊었어라고 얘기하셨지만


아직도 난 큰 돌덩이 같은

미안함이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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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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