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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180728 Paris

by 장영진

어느새 파리에서 세 번째 날이다. 유모차 사건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모든 하루가 다 중요하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2013년 아내와 결혼 후 파리로 신혼여행을 왔다. 요즘 여러 블로그를 통해 파리 커플 스냅사진을 구경하고 있으면 (물론 모델이 잘나서 그렇겠지만)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근래엔 유럽 신혼여행에서 스냅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업체도 많지 않았고, 비용도 너무 비쌌다. 신혼여행 그 봄날의 파리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 물론 찍으려면 얼마든지 찍을 수는 있었다. 카메라도 있고, 삼각대도 들고 갔고. 하지만 결혼식을 치르느라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이유야 어떻든 신혼여행에서 사진을 더 많이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더랬다.

2014년 1월, 신혼여행의 아쉬움을 만회하고자 우리는 다시 파리를 찾았다. 여행의 주 목적지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었지만, 우리는 무리해서 파리에서의 일정을 하루 잡았다. 바로 신혼여행 때 못 남긴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추운 겨울 파리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남겼었다. 신혼여행 때와 같은 봄의 파리 거리가 그리웠지만, 겨울의 파리도 나름 멋지긴 했다. 꼭 한나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현재 집 거실엔 그때 찍은 사진 액자가 걸려 있기도 하다.

2014년 봄, 독일에 와서 살 당시에도 파리를 다시 방문한 적이 있긴 하다. 앞서 이야기한 학창 시절 함께 일본 여행을 갔던 친구 녀석이 유럽여행을 오기로 했었다. 파리로 가 친구를 만나 며칠을 보냈다. 그토록 기다린 봄의 파리였지만, 친구 녀석 사진을 찍어주느라 정작 우리 사진은 별로 못 남겼다.

그리고 오늘. 둘만의 여행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였고, 그동안 사진을 남겼던 장소에 방문하여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오늘은 시간을 아껴야 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호텔 지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아침에 나설 때만 해도 날이 조금 흐려 보였지만, 점차 하늘은 파란색을 띠기 시작한다. 감사하다. 건조한 봄 날씨만큼이나, 우리도 상쾌하게 길을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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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셋째 날 일정 시작. 트램 타고 에펠탑까지 가기 (2018.7. 프랑스 파리)



첫 번째 사진 촬영 장소는 에펠탑 인근. 에펠탑에서 우리가 생각한 촬영 지점은 먼저 비르아켐 다리(Pont de Bir-Hakeim) 중간에서 한 컷. 그리고 샤요궁(Palais de Chaillot) 위에 올라가 한 컷이었다. 가는 길은 역시나 멀었다. 트램을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들 낮잠 시간이 되어버렸다. 컨디션 좋게 사진을 남기고 싶었기에 일찍 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유모차에서 아이들을 재울 겸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는 길엔 잠시 약국에 들러 화상 치료 연고를 샀다. 아내는 남편 배에 흉터가 남을 것이라 걱정이다. 그나마 옷 속에 가려진 부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들이 잠든 사이, 허기를 달래고자 Bir-Hakeim역 인근 이탈리아 식당에 들어가, 파스타와 피자 메뉴를 각각 주문했다. 파스타는 우리가 먹고, 피자는 절반을 포장해서 아이들이 일어나면 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두 가지 메뉴 모두 너무 맛이 없었다. 피자는 어지간히 짰고, 파스타는 우리가 시중 소스를 사다 해 먹는 맛보다도 못했다. 사실 구글 평점에서도 그리 높은 점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스타가 맛이 없어 봐야 얼마나 없겠어라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우리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에펠탑 인근 그 좋은 자리에서, 비싼 가격을 내고 먹는 음식 치고는 참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남은 피자를 포장해서 가게를 나왔다.

식당에서 나와 비르아켐 다리로 향했다. 사실 이곳은 에펠탑 뒤편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길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신혼여행 때 호텔이 이 부근이어서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이쪽으론 와 보지 않았을 터. 신혼여행 중 아침 산책을 하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발견했고, 그때 남긴 사진이 맘에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그 사진 느낌 그대로 아이들과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다리 중간 즈음에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신혼여행 때는 이른 아침이어서 우리 말곤 아무도 없었다. 날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시간대가 가장 붐비는 시간이어서일까. 오늘은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도 있었다. 아마도 프랑스 연인인 듯 보인다. 우리도 신혼여행 때 저렇게 사진을 남겨야 했는데. 다시 아쉬운 마음이 살짝 찾아온다.

그나저나 사진작가를 통해 사진을 남기고 있는 연인의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나 스스로 남들의 시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나 또는 우리 가족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리고 기왕이면 저 연인처럼, 누군가 보기에, 아니 실제로도 우리 가족이 존재 자체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그렇다면, 우리 모습을 보며 누군가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우리만 행복하다고 될 일도 아니다. 내가, 우리가 행복한 만큼 다른 이들도 동일하게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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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스팟. 비르아켐 다리 인근 (2018.7. 프랑스 파리)



세상 행복해 보이는 연인 구경에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조금씩 부모는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사진 찍을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깨웠다. 우리는 신혼여행 때 찍은 부부의 사진 구도 그대로 찍길 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신혼여행 때와 카메라도, 렌즈도 바뀌었다. 다양하게 구도를 잡아보려 노력해도, 그 느낌이 잘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날씨도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진 몇 장을 급하게 촬영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협조를 잘해주었다. 다리 위 공간에서 몇 컷. 다리를 건너가며 몇 컷. 그때 그 느낌을 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이래서 모방이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그래도 아들들이 잘 자고 일어났고, 파리 첫 장소에서의 사진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는 데에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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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스팟. 비르아켐 다리 인근 (2018.7. 프랑스 파리) / 다리를 건너 샤요궁으로 향하는 길 (2018.7. 프랑스 파리)



비르아켐 다리에서 1차 촬영을 마치고, 샤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고도가 높은 곳이라 유모차를 끌고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는 않았다. 올라가는 길 중턱, 잠시 멈춰 자리를 펴고 앉았다. 쉬면서 아이들 점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포장해온 피자와 과자. 아침에 싸 온 약간의 밥을 먹이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들은 준비해 온 음식을 곧잘 먹었다. 우리가 너무 기대하고 먹어서 맛없다고 느낀 것일까? 꽤 더운 날씨지만 그래도 그늘은 시원했다.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로 사진 촬영 모드로 돌입했다.

문득 파리에 와서 처음 샤요궁에서 에펠탑을 접했을 때가 떠올랐다. 내 인생 처음 에펠탑은 군대 제대 후 형과의 첫 유럽여행 때였다. 그때도 더운 여름이었지. 당시 한인 민박에서 만난 일행들과 오후 늦게 에펠탑에 왔는데, 그때는 그냥 남들 따라가 사진 몇 장 찍고 온 기억뿐이다. 물론 노을 지는 하늘을 뒤로한 에펠탑은 정말로 아름다웠더랬다. 하지만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기엔 내가 조금 어렸나 보다. 무엇보다 그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기억 속 가장 인상 깊었던 에펠탑은 2014년 봄의 모습이다. 아내와 독일에서 생활을 마치고, 파리에 잠시 들렀을 때였다. 밤늦은 시간, 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당시 파리에 처음 방문한 친구와 에펠탑 야경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어두움. 은은한 조명. 추적추적 내리는 비. 자욱하게 내리 앉은 안개까지. 이 모두가 어우러져 근사한 에펠탑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다. 비 내리는 밤, 가스등 불빛의 파리 거리와 에펠탑. 파리라는 도시를 잘 나타내 주는 재료들이 아닐까? 왠지 영화 속 등장하는 파리의 거리 딱 그 그림이었다. 나에겐 그 봄의 에펠탑이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처음 에펠탑을 마주한 사람이면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끼리라 믿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기대한 나머지 실망을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보고 느낀 에펠탑의 모습보다, 더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특히 꼭 비 오는 밤, 샤오궁에 가보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점이 사실 내가 가진 파리에 대한 인식(늘 힘들고, 여행객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은 아님에도 항상 다시 가고 싶어 지는 오묘한 매력을 지닌 도시)처럼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고 느낀다.

두 아들은 참 어린 나이에 에펠탑에 왔다. 사진은 남아도, 나이가 들면서 이 장면을 기억하진 못하겠지. 부디 바라기는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 힘으로 다시 에펠탑을 마주했을 때,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떠올렸으면 좋겠다.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왔다는 단순한 자랑과 허풍이 아니라, 사진 속에 남아있는 우리 가족의 웃음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고.

우리는 파란 하늘,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여러 사람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다소 더운 것만 빼면 날씨는 완벽했다. 그리고 잘 자고 일어난 아이들도 즐거워 보였다. 조금만 덜 복잡했더라면, 더 좋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그것만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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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에펠탑 앞에서 한 컷 (2018.7. 프랑스 파리)


첫 번째 사진 촬영을 잘 마치고 광장 아래로 내려왔다. 언덕을 내려오면 Carousel이라는 이름의 놀이공원이 있다. 놀이공원이라고 해봐야 회전목마가 전부이지만. 두 아드님께서 이곳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동안 파리에 와 이곳을 지나가면서 저 회전목마를 타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아이들과의 여행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처음으로 회전목마를 타기 위한 칩을 사고 아이들을 태워줬다. 그나마 생각보단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때문에 우리도 기분은 좋았다. 길고 길었던 에펠탑에서의 사진 촬영과 놀이공원 미션을 완료하고, 우리는 두 번째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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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아래 회전목마에서 즐거운 아이들 (2018.7. 프랑스 파리)



다음 목적지는 바로 노틀담 성당으로 정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노틀담 성당과 그 일대는 우리 부부에게 나름 특별한 장소이다. 노틀담과 그 인근 거리에서 꼭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오늘은 반드시 성공해야지.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바로 이동했다. 노틀담 인근과 시테섬, 센강 변의 다리와 거리의 파리스러운 풍경은 “여기가 바로 파리야”라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노틀담 성당에 도착해, 화장실을 들렀다 바로 뒤편 공간으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펠탑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인지,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해가 지기 시작해 사진 찍기에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결국, 추억의 나무 배경으로 몇 컷, 바로 인근의 다리 위에서 몇 컷. 급하게 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역으로 가기 위해 시테섬 바로 옆의 생루이섬을 가로질러 가기로 했는데, 지나가면서 들린 가게의 촉촉한 마카롱은 정말 특별했다. 파리에서 먹어봤던 마카롱 중에 손에 꼽는다.

사실 오늘 몽마르트르 언덕까지 방문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하지만 역시나 아이들과 여행에서 하루 3가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시간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보통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과 다니다 보니 시간은 하염없이 지체된다. 때로는 애가 타지만, 어찌 보면 그래서 욕심부리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오면 되니까”라고 생각해버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우리는 몽마르트르 언덕은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올 수 있겠지.

내일은 벌써 파리를 떠나는 날. 우리는 호텔로 복귀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빨래와 짐 정리에 시간을 보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이 도시에서 4박이나 했음에도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유모차 사건 때문인가. 아니면 날이 더워서였을까. 숙소에라도 에어컨이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아쉬운 점들이 셀 수 없이 있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마음에 묻어두어야겠다. 어쨌든 무사히 파리 일정까지도 마칠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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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당시 바로 그 장소에서 아내 사진 (2013.4. 프랑스 파리) / 5년 만에 다시 방문, 이번엔 아들들과 (2018.7.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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