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27 Paris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아직 시차 적응을 못 했는지, 아니면 유모차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며칠을 일찍 깨니 피곤했다. 깨자마자 유모차 업체 검색을 위해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다시 무한 검색에 돌입했다. 그리고 마땅치는 않지만 몇몇 브랜드와 업체를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가 일어나고 대화 끝에 조이(Joie) 브랜드의 쌍둥이 유모차를 사기로 했다. 한국에서 그리 인기 있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쌍둥이 유모차치고 가격 부담도 크지 않고, 우리가 끌고 다니기에 크기도 알맞아 보였다. 220유로짜리 유모차였는데, 마침 몇몇 업체에서 10% 할인 중이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고, 아침을 먹기 위해 지하 식당으로 향했다. 파리 호텔은 조식을 제공해주었다. 비록 빵과 시리얼, 음료 정도의 정말 간소한 식사였지만 누군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을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후보로 선정한 업체 중, 우선 가깝고 평점이 높은 곳을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20분 이내 거리 Nation역 근처에 유아용품 판매점이 있었지만, 그곳엔 우리가 찾는 유모차가 없었다. 다른 유모차도 마땅치는 않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제 찾아놓았던 업체로 향하기로 했고, 다시 트램에 탑승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꽤 멀었다. 거의 40분가량 트램을 타고 가서, 15분 정도 도보로 이동해야 우리가 가려는 상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Sauvel Natal이란 이름의 상점. 숙소 근처 용품점과 비교해 훨씬 다양한 유모차와 유아용품을 팔고 있다. 부서진 유모차를 대체할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혹 그냥 아이들 물건을 구경하러 온 것이라면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용건은 분명했다. 시간도 어느덧 거의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유모차 때문에 어제 오후, 그리고 오늘 오전 시간이 고스란히 낭비된다는 시간에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가격 그대로 유모차를 살 수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모차를 확인하고 결제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세금 환급 서류까지 꼼꼼하게 챙겨 받았다.
파리에서 유모차를 새로 사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계획했던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볼 겨를도 없었다. 어제 유모차가 고장 났을 당시 매우 당황스럽고 짜증도 났지만, 막상 새 유모차를 받고, 끌고 다니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새것이라서 그런가. 끌고 다니기에 훨씬 편했다. 유모차를 사고 나오자 어느새 아이들 낮잠 시간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을 스타벅스까지 걸어서 이동(25분 소요)하기로 했다.
오후 1시 30분경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계획대로 걷는 도중 아이들이 잠들었다. 아이들도 새 유모차가 좋은지 생각보다 순순히 잠을 청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하지만 스타벅스 안에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그리 넓은 매장이 아니어서,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들어가 있기도 참 애매했다. 다행히 금방 자리가 났고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샐러드, 케이크 등을 사서 먹기 시작했다. 시원한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가 들어가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치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받은 보상 같았다. 문제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깨버렸다는 사실. 실내가 조금 더웠는지 아이들 옷이 흠뻑 젖었다. 휴식 시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아이들도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우리는 샐러드 등을 추가로 사서 아이들을 먹이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 그리고 오늘 오전. 거의 한나절을 유모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인제야 본격적인 파리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는 아이들 핑계로 이층 버스(Big Bus) 여행을 하기로 했다. 뮌스터에서 이층 버스 덕분에 편리하게 도시를 다닐 수 있었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번엔 사전 예약을 완료했다. 파리에 몇 번 왔지만 2층 투어버스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엔 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 이층 투어버스가 거리를 다니는지 몰랐다. 아마도 관심 밖 영역이기에, 시야에서 안 보였던 걸까. 파리에 정말 다양한 종류의 투어버스가 있고, 탑승하는 곳 또한 제각각이다.
우리는 버스 탑승을 위해 에펠탑 방면으로 향했다. 에펠탑 근처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려 걷는 중,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린 급하게 큰 나무 아래로 잠시 피했다. 갑자기 소나기라니. 자리를 잡고 앉은 김에 아이들에게 빵과 음료 간식을 주었다. 그리고 비가 멈추고 에펠탑 앞에서 인증 사진 한 장. 곧장 버스에 탑승했다. 이틀 동안 마음껏 버스를 탈 수 있으니 편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불편한 점도 많았다. 가장 번거로운 일은 유모차를 챙기는 일. 유모차를 들고 타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으며, 유모차는 1층에 접어두고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2층에 올라가 두 아들은 얌전히 앉아 있질 못했다. 아이들은 자리를 옮기고 구경하느라 위험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우리가 생각한 그림은 분명 이게 아닌데.
사진 속에 담긴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 즐거워 보이지만, 사실 이층 버스를 타는 일은 상당히 힘들고 어려웠다. 파리 도심을 가로질러, 우리 목적지인 노틀담 성당 부근에 다다랐다. 우리가 하차 지점으로 노틀담 성당을 택한 것은, 투어버스의 루트 중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하차 지점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곳이 우리 부부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노틀담 성당 뒤뜰에 나무가 우거진 지역이 있다. 신혼여행 때 파리 시내 가이드 투어 중 가이드가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준 후로 우리는 파리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사진을 남겨 왔다. 아내 혼자 찍힌 봄과 겨울 사진. 바로 그 자리에서 여름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날이 너무 더웠다. 아침부터 이동 거리가 너무 멀었나 보다. 너무 힘들었다. 결국, 노틀담 앞에서 온이가 떼가 단단히 났다. 매번 들르던 성당 옆 크라페 집과 젤라또 판매점을 들러 맛있는 간식을 사주며 달래 봐도 소용이 없다. 온이의 막무가내 짜증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피곤하고 더위 때문에 짜증이 났나 보다. 결국, 오늘 남은 일정은 포기하고, 호텔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 곳에 여행 와서 계획한 일을 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혼자의 여행 또는 둘의 여행일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포기하는 게 있으면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어서 괜찮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이들의 몸 또는 마음 상태 때문에 하려고 한 일을 못 하게 되면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걱정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그 상황.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현실이 때론 더 슬프다.
들어오는 길에 물과 음료, 저녁거리 등을 사기 위해 장을 보기로 했다. 마침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까르푸가 있었다. 시원한 마트에 가니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다시 힘이 나는 눈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카프리 썬)도 잔뜩 샀다. 내일은 음료를 얼려서 나가면 좀 낫겠지. 시원한 실내에서 있으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다. 호텔에 들어가면 또 덥겠지.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 더 있고 싶었지만, 저녁 시간이 지나버렸다. 우리는 부지런히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장대비. 갑작스러운 폭우에 나와 아내는 많이 당황했다. 호텔에 힘겹게 도착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호텔에 들어오고 나니 날이 개는 것이다.
호텔에 들어와 간단히 저녁 식사를 차렸다. 아이들도 지칠 대로 지쳐 입맛이 없나 보다. 그건 부모도 마찬가지. 게다가 밥을 하고, 누룽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뜨거운 물이 튀겨 배에 화상을 입었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시작됐다. 화상 부위도 생각보단 커서 걱정이다. 오늘도 역시나 버거운 하루구나. 내일은 조금 나으려나. 아내와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로 말을 맞췄다.
파리에 와서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복귀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이들의 컨디션 때문에 너무 일찍 들어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린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내일은 파리에서 (셀프 촬영) 사진을 찍는 날. 비록 뮌스터에서 사진 찍을 때와 같은 옷이겠지만, 그래도 예쁘게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다. 부디 잘 자고 일어나 내일 아이들 몸 상태가 좋았으면.
피곤했는지 아이들도 일찍 잠들었고, 내일을 위해 나와 아내도 간단히 방을 정리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