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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브레멘, 파리

180725 Münster Bremen Paris

by 장영진

오늘은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날.

일정이 조금 복잡했다. 뮌스터에도 Münster Osnabrück란 이름의 공항이 있다. 뮌스터와 오스나뷔르크는 이웃 도시이다. 아마 세계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베스트팔렌 조약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무대가 뮌스터와 오스나뷔르크이다. 두 도시 접경에 있는 공항은 대체로 국내선을 중심으로 운영하기에, 국외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인근 도시 공항인 도르트문트, 뒤셀도르프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파리로 가는 비행기 중 브레멘에서 파리로 향하는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가격도 시간도 가장 좋았다. 뮌스터에서 브레멘으로의 이동 시간 또한 1시간 남짓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해당 비행기를 예약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일찍 깼다. 도시 이동 날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길을 나섰다. 비행기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지만, 기왕 브레멘에 가는 거 반나절 정도 그곳 구경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바로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기차 출발 시각까진 대략 5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사이 아이들을 재워서 기차에 탑승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 안 스타벅스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사고, 중앙역 빵집에서 세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빵을 구매한 후, 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온이는 아기 띠에 매고, 역 안을 뺑뺑 돌았다.

일명 뺑뺑이. 우리 부부에게 있어 뺑뺑이란, 아이가 잠들 때까지 차 또는 유모차를 타고 주변을 뱅뱅 도는 행위를 의미한다. 어릴 적부터 잠자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던 첫째 아들. 이 녀석을 재우기 위해, 정말 자주, 먼 거리를 차로 뺑뺑 돌았다. 첫 아이였기 때문에, 아마 아이를 재우는 방법도 몰랐고. 아이도 자는 방법을 몰랐었다. 아이를 재우는 게 참 어려워, 당시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어떤 학생이 “아이가 자는 방법을 몰라서 그럴 거예요.”라고 답을 해주었다.

그래, 왜 그걸 몰랐을까. 그 어려웠던 시기가 다 지내고 난 다음에야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아니,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 잠을 못 잔다고 힘들어하고 혼내기만 하는 부모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겠다. 아마도 그 시절 차로 동네를 돌며 들인 시간과 유류비를 계산했더라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미세먼지 문제에도 상당 부분 일조했을지 모른다는 양심의 가책도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참 힘들었다.

이처럼 우리 부부에겐 세현이 잠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다. 서문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미 두 차례 유럽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취소하는 일을 반복한 경험도 있다. 큰 맘먹고 가보려고 하다가도, 날짜가 가까워져 오면서 결국엔 포기.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2018 유럽412.jpg 뮌스터를 떠나 브레멘행 기차 기다리는 중 (2018.7. 독일 뮌스터)


기차 출발 시각이 임박했다. 다행히 이번엔 기차가 연착되지는 않았다. 사실 첫날 본에서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고생한 나머지 다소 걱정이 됐다. 다행히 기차는 정시 출발. 온이는 계획대로 기차에 타기 전 잠이 들었다. 기차는 만석이었다. 많은 짐과 유모차를 놓아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세현이도 잠이 들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브레멘에 도착할 즈음. 기차에서 내리면서 아이들이 당연히 깰 것으로 생각했다.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세현이는 곧 깰 것처럼 잠시 뒤척였다. 하지만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내려서 유모차를 펼치고 눕혀주니 이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두 아이가 동시에 잠을 자는 상황은 우리에게 최상의 시나리오 아닌가. 기왕 이렇게 된 거 피곤해하는 아이들을 충분히 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 전 아이들 낮잠 실패 요인이 더위에 있었다고 판단하여, 최대한 시원한 곳에서 아이들이 잘 수 있도록 브레멘 역 안의 rossmann 등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 우리도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역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기에, 역 안 아시아 음식을 파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들이 잠든 지 거의 4시간이 지났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아이들이 깨더라도 브레멘 중심부로 나가기로 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더위를 피한다고 트램을 이용해 시내 중심부로 향했다. 트램에서 내릴 때까지도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2018 유럽418.jpg 브레멘 중앙역 지하 풍경 (2018.7. 독일 브레멘)


시내 중심부에서 처음으로 들른 곳은 스포츠 전문점. 더위도 식힐 겸, 아이들 신발과 옷, 축구 유니폼 구경도 할 겸 들렀다. 상당히 큰 규모의 매장이다. 들어온 지 20분 지났으려나, 세현이가 먼저, 곧이어 온이도 잠에서 깨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고 우리는 용품점을 나왔다. 그리고 인근 브레멘 대성당(St. Petri Dom Bremen) 앞 광장으로 이동하여 아이들 점심을 먹이기로 했다. 광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으면서 포장해온 음식과 아침에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었다.

세현과 세온 두 아들은 닮았지만 다르다. 세현이는 쌀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덕분에 유럽에서 밥 먹이기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빵이든, 피자든, 파스타든 다 좋아한다. 반면 세온이는 꼭 밥이 있어야 한다. 빵도, 피자도, 파스타도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밥이 있어야 배부르게 먹는다. 두 아들의 다른 식습관 때문에, 유럽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차라리 비슷하다면 맞춰 준비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기에 식당에서 메뉴를 정하기도,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기도 참 고민스럽다.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육아의 과정에서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겠지. 그냥 받아들이고 맞추는 수밖에.

오늘 점심 또한 온이에겐 밥을, 현이에게는 도넛과 간식거리를 주었다. 더불어 광장에서 팔고 있는 (전혀 시원하지 않은 생과일) 오렌지 주스도 함께. 날도 덥고, 배불리 먹을 주위 환경은 아니었지만, 푹 자고 일어나서인지 아이들 컨디션은 좋았다. 두 아이 모두 어느 정도 배는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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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대성당 광장에서의 점심 식사 (2018.7. 독일 브레멘) / 비눗방울 놀이에 재미 들린 어린이 (2018.7. 독일 브레멘)



식사를 마치고 브레멘 대성당(Bremen Dom) 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브레멘에는 반나절 정도만 있을 예정이었기에, 도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도시 정도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브레멘에 대한 정보라면, 브레멘 음악대 정도? 세현이도 얼마 전 브레멘 음악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우리는 혹여나 주변에서 관련 내용을 찾을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비록 거쳐 가는 도시라 하더라도 조금 더 공부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물론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린 늘 지나고 나서 아쉬워한다.

대성당 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멀지 않은 브레멘 시청 옆 광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마침 시청 앞 광장(Bremen Market Square)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비눗방울 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광장에는 정말 많은 어린이가 뛰어놀고 있었고, 세현이와 세온이도 덩달아 즐겁게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두 아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눗방울이 신기했나 보다. 여행 와서 가장 신이 나는 눈치다.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파리행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급하게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광장 한편에 있는 브레멘 롤란트(Bremer Roland)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겼다.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중앙역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짙은 구름 아래 브레멘의 이미지는 조금 어두웠다. 짙은 색조의 건물들, 브라운 색상의 중앙역까지. 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랜 시간 모진 풍파를 견뎌 온 건물들의 지난 시간이 이 도시 곳곳에 스며 있다고 해야 할까?

걷는 내내 구름 낀 날씨와 잘 어울리는 브레멘 구시가지의 매력을 한껏 느끼며 중앙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바로 짐 보관소에서 맡겨둔 짐을 찾았다. 짐이 꽤 많았기에 보관함도 두 개나 이용했다. 여행할 때마다 짐을 최소화하려고 하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뮌스터에서 캐리어를 하나 더 구매하지 않았는가. 많은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공항으로 향하는 트램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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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롤란트 앞에서 가족사진 살짝 (2018.7. 독일 브레멘) / 브레멘 중앙역의 모습 (2018.7. 독일 브레멘)



트램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우리 부부에게 고민이 하나 있었다. 탑승할 에어프랑스 항공기에 무료 수화물이 없었기에, 사전에 23kg 수화물 위탁 옵션을 추가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로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가방에 잘 나눠 담아 추가 요금을 절약할 것인지, 아니면 속 편하게 위탁 수화물을 추가할 것인지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2~3만 원이 적은 금액이라 생각되지만, 실상 여행 중에는 그런 금액도 크게 느껴진다. 물론 돈을 대하는 나와 아내의 성향 때문이겠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무게를 측정할 저울을 찾아 헤맸다. 예상한 대로 추가 수화물 하나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우리는 즉시 모바일로 에어프랑스 어플을 내려받고, 수화물을 추가했다. 보통 카운터에서 직접 수화물을 추가할 경우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바일로 재빠르게 신청, 결제 후 체크인을 완료할 수 있었다.

처음 마주한 브레멘 공항 입국장. 이용객이 그리 많진 않았다. 작은 규모의 공항은 한적했고, 우리는 입국장 내에서 아이들과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출국 시간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뮌스터의 에어컨 없는 숙소에서 너무 고생했던 터라, 예약 중인 파리 호텔에 에어컨이 있는지 다시 찾아보니 역시나 없었다. 여름 여행을 하면서 대체 왜 에어컨을 조건으로 포함해 숙소를 찾지 않았는지. 게다가 밤늦게 파리에 도착해 시내 숙소까지 이동할 여력이 없었다. 고민 끝에 샤를 드골 공항 바로 인근의 노마드 파리 루아시 CDG 호텔을 하루 예약했다. 에어컨이 있고, 가용 예산 범위 내 호텔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우리가 탑승할 AF1525 비행기는 18:55에 브레멘 공항을 출발하여 20:20에 파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탑승 전 온이를 재울 수 있었다. 세현이는 비행기에서 영상을 보느라 삼매경. 한 시간 남짓 짧은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 근처 호텔의 큰 장점, 셔틀을 타고 호텔로 입성할 수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간단하게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에어컨 딸린 방이던가. 들어오자마자 돈 10만 원 더 쓰길 잘했다고 이야기했다. 덕분에 네 명 모두 오랜만에 깊이 잘 수 있었다.

또다시 파리에 왔다. 그동안 우리 부부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겨 주었던 이 도시에서, 우리 가족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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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공항 안에서 파리행 비행기 기다리기 (2018.7. 독일 브레멘) / 영상 삼매경에 빠진 현이, 그림 그리기에 심취한 온이 (2018.7. 독일 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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