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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20180724 Münster

by 장영진

뮌스터에서 맞이한 두 번째 아침.

아이들이 조금은 적응을 한 것일까? 적당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고, 아침을 먹기까지 방 안에서 놀이 시간을 가졌다. 숙소 위치가 중앙역 바로 뒤였기에, 창문으로 뮌스터를 거쳐 가는 여러 종류의 기차를 구경할 수 있었다. 기차를 좋아하는 첫째 아들에겐 방안이 어찌 보면 가장 좋은 극장이자 놀이터인 셈이다. 물론 저 앞의 흰색 바탕, 빨간 줄 기차가 자신이 6개월 뒤 그토록 갖고 싶어 하게 될 LEGO City 60051의 모델인 줄 그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2018 유럽272.jpg 호텔 안에서 독일 기차 구경하기 (2018.7. 독일 뮌스터)



오늘은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4년 전 아내와 이곳에서 지내면서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당시엔 이곳이 우리 동네 같다고 생각을 해서였을까. 본래 자기 동네에선 사진을 잘 안 찍게 되지 않는가. 아니면 이 도시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도시인지 몰라서 그랬을는지도 모르겠다. 뮌스터는 우리에게 있어 그저 우연히 만난, 그런 도시였다. 그래서 그 시절 찍은 사진들을 꺼내어 볼 때마다 뮌스터 사진은 거의 없다.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뮌스터를 배경으로 가족사진 한 장 남겨보겠노라 단단히 각오하고 길을 나섰다. 우리 가족 모두 들고 온 옷 중 나름(?) 괜찮은 옷을 차려입었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사진 찍기에 완벽한 날씨였다. 아이들 컨디션 또한 나쁘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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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2일차 일정 시작, 오늘은 사진 촬영 (2018.7. 독일 뮌스터) / 부부의 추억 속 빵집, pain et gâteau (2018.7. 독일 뮌스터)



우리가 생각한 사진 촬영 장소인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 추억 속 빵집 pain et gâteau 앞에 잠시 멈춰 섰다. 4년 전 우리에게 방을 빌려준 유학생과 함께 뮌스터 방문 첫날 들른 곳이다. 말하자면 중앙역 다음 뮌스터의 첫 기억과 같은 장소. 여러 종류의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데, 카페 2층에서 마신 카푸치노의 향과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제 방문했던 hotdog station과 함께 뮌스터에 오면 꼭 다시 방문하고픈 곳이었다. 하지만 내부 공간이 협소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기에 조금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4년 전처럼 여유롭게 커피의 향을 음미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는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찬찬히 거리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뮌스터 대성당(St.-Paulus-Dom)에 도착했다. 문득 2014년 대성당에서 있었던 부활절 미사(예배) 모습이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유럽 여러 도시를 다니며 많은 성당에 가보았지만, 부활절 미사를 드리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유럽에 교인이 이렇게 많나? 엄숙한 분위기 속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예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예배 모습을 바라보며 - 특히 종교 전쟁의 큰 무대 중 하나였던 이 도시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면 - 과연 이곳 사람들에게 기독교란 무엇일까. 종교란 무엇인가. 이런 부류의 고민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피를 흘리며 싸웠던 바로 이 도시의 중심부에서 말이다. 우리가 너희에게, 내가 너에게. 진짜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요구한다는 무서운 진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일까.

이른 시간 대성당 앞 광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2014년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땐, 마침 전통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열리는 전통시장에서 식료품을 비롯해 다양한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때와 지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시장 구경도 재밌지만, 사진을 찍어야 하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곧장 인근 벤치에 유모차와 짐을 풀어놓고,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위치를 결정했다.

사실 아이들과 사진 촬영 과정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구도를 정하고, 아내에게 자리를 잡도록 한다. 그다음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리고, 초점 거리를 맞춘다. 모든 세팅이 완료되면 아이들에게 엄마 옆에 가서 자리를 잡도록 이야기하는데, 이 과정이 가장 어렵다. 아이들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육아의 과정이 그렇듯, 아이들이 내가 의도한 대로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늘 어렵다. 어렵사리 아이들이 엄마 근처로 가 자리를 잡으면, 나는 10초 타이머를 맞추고 프레임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가족 모두가 맘에 드는 사진을 만나기 위해서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 아이들은 점점 자리를 이탈하고, 결국 가장 그럴듯한 사진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촬영을 마친다.

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 만난 사진. 물론 전문 작가가 찍어주는 사진에 비교하면 퀄리티가 형편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과정이 사진과 함께 기억되기에 훨씬 가치 있다고 느낀다. 그 장면 그대로 기억 속에 사진으로 남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할 때면, 찍을 당시의 감정과 생각들이 떠오른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한 장의 사진 그 이상의 가치를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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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대성당 앞에서 사진 찍기 프로젝트 (2018.7. 독일 뮌스터)



사진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오늘 우리는 중대한 결단을 했다. 바로 뮌스터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돈을 아끼며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여행 중 대부분 걷거나 꼭 필요할 때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가끔 택시도 타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교통비로 큰 비용을 들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오늘도 뮌스터 시내를 온종일 걸어 다니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함께는 엄두가 안 났다. 또,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시티 투어 버스를 타보겠는가. 시내 정보 센터로 가서 거금(?)을 들여 티켓을 샀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버스를 기다려 탑승했다.

버스는 2층으로 되어있다. 이층 버스를 탔으면 당연히 2층에 올라가 봐야지. 2층에 올라와 보니 아이들이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눈치다. 출발은 완벽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2층에서 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뮌스터 시내 거리의 모습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부모의 안색은 변해 간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온이는 계속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시도한다. 아이가 넘어지려고 하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 눈치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뮌스터 시내가 그리 넓지 않다는 사실. 버스는 우리가 가려던 목적지인 Aasee에 곧 도착했다.


2018 유럽321.jpg 태어나서 처음 2층 버스 타보기 (2018.7. 독일 뮌스터)


Aasee는 뮌스터에 있는 인공 호수이다. 도시 규모와 비교하면 호수는 꽤 큰 크기를 자랑한다. 4년 전 호숫가에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분명 뮌스터를 떠나며 다시 오면 우리도 저들처럼 놀자고 다짐했건만,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과 파티를 하기엔, 아직 너무 어렸다. 유모차를 끌고 호수 주변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산책로가 맘에 들었는지 아이들이 금방 잠들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뮌스터 골목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시내까지 그리 멀진 않았다.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아이들이 볼만한 책자를 팔고 있었다. 아마 그 집 아이들이 다 보고 난 책일까. 기념으로 세현이와 세온이가 좋아할 만한 기차 책과 동물 책을 샀다. 독일어로 되어있었지만, 아이들은 한국에 와서까지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세현이는 종종 그 책을 읽어달라고 엄마에게 요청한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웠다는 핑계로) 세현이를 아빠에게 다시 보낸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열심히 공부했는데. 독일 어린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 물론 세현이에겐 한껏 아는 척을 하긴 하면서도, 스스로 부끄럽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분명 고등학교 3년 동안 독일어 수업을 들었고, 선생님께 혼나가며 암기를 했다.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다. 독일어 과목에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내게 독일어는 너무 낯선 언어일 뿐이다.

반면 중학교 3학년 때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첫 해외여행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독학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반나절 만에 히라가나를 외워 버리고, 일주일 동안 일본어 기초 문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때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지금도 일본 여행을 가서 활용한다.

공부한 시간이나 양으로 따지자면 독일어 쪽이 훨씬 많겠지만, 지금 이 순간 더 익숙한 언어는 일본어이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어순이 비슷해 기초 일본어를 배우기가 더 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독일어는 억지로 배웠고, 일본어는 배우고 싶어 배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자신의 흥미와 적성과는 관계없는 것들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게다가 그것을 잘해야만 한다고 사회는 강요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걷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당장 아이들을 깨워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모처럼 동시에 잠든 아이들을 일부러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시 더위를 식힐 겸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 도서관 근처의 café fam이란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다른 손님이 많지 않아서 유모차를 놓을 공간은 충분했다. 자리를 잡은 후 아내는 아이스라테, 나는 (약간의 얼음과 함께)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유럽에서 스타벅스를 제외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더운 여름 여행 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날 때가 있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동네마다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고민 끝에 나만의 방식을 발견했다. 에스프레소, 약간의 얼음. 그리고 들고 다니던 약간의 물을 추가하면 어디서건 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두 아들이 같이 잠든 덕분에 오랜만에 데이트하는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다 보니, 마치 연애할 때와 같은 이 상황이 조금은 어색하다. 하지만 연애 초기에 느끼는 설렘과는 다른 설렘이 있다고 해야 할까. 둘만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지 않으니, 이런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사진도 찍고 대화를 나눴다.


2018 유럽329.jpg 곤히 잠에 빠진 예쁜 두 아들 녀석 (2018.7. 독일 뮌스터)



얼마 지났을까. 세현이가 잠에서 깼다. 아내와의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버려 아쉽기도 했지만, 이제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었다. 잠시나마 두 아들이 부모만의 시간을 허락해 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카페에서 나와 인근 식당 Royal & Rice로 향했다. 우리 부부에겐 이 식당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4년 전 우리 부부가 처음 뮌스터에 왔을 때 아내가 몸살과 목감기로 고생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직장을 다니다 급하게 출국을 했다. 영국에 도착해 런던에서 며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돈을 아껴보겠다고 야간 버스로 도버해협을 건넜다. 그리고 독일 쾰른에서 버스를 내리자마자 기차를 타고 뮌스터로 넘어왔으니 몸이 좋을 리 만무하다.

Royal & Rice는 뮌스터로 어렵게 넘어와 처음 찾아간 식당이었다. 독일에 처음 발을 내디디고,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익숙한 아시안 식당을 찾았다.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 아시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메뉴인 팟타이 등을 주문하고, 몸이 안 좋은 아내는 따뜻한 사과 생강차를 주문했다. 정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내는 그때 마신 사과 생강차 덕분에 감기가 나을 수 있었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게다가 음식 맛 또한 나쁘지 않으니, 뮌스터에 오면 꼭 다시 오고픈 곳이었다.

사실 해외에서 동남아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민이 있었다. 동남아 음식을 좋아하지만, 고수 나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태국 방콕 여행을 가서는 고수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 4년 전에도 이 식당을 처음 방문했을 때, 쌀국수에 들어간 고수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는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 언어로 고수가 무엇인지 꼭 검색한다. 영어(Coriander)와 독일어(Koriander)로 고수를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놨고, 주문할 때 제외해 달라 요청했다. 주문을 마치고, 음식이 기다리던 중 온이도 잠에서 깼다. 점심을 따로 먹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낮잠을 얼마 못 자고 일어난 아이들이 걱정스러웠지만, 아이들은 더위 속에서도 비교적 협조적이었다. 덕분에 점심을 무사히 먹고 다음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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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식당, 로얄 & 라이스 (2018.7. 독일 뮌스터) / 더운 날씨 점심 식사를 기다리며 (2018.7. 독일 뮌스터)



식사 후 더위를 피하고자 시내 중심부 백화점 Galeria Kaufhof에 들어갔다. 온이 기저귀도 교체할 겸 화장실에 들렀다. 독일에선 백화점 화장실을 이용할 때 약간의 돈을 내야 한다. 4년 전 독일에서 지내면서 처음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곳에선 이곳 규정을 따라야 하는 법. 돈을 받는 곳은 관리가 잘 되는 편이어서 어찌 보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후 아이들을 위해 1층의 젤리 판매점으로 향했다. 직접 봉지를 들고 원하는 상품을 담을 수 있는 형태의 젤리 가게는 어딜 가나 비슷한 모습이다. 모든 젤리를 다 사버리겠다는 막무가내 아이들을 겨우 설득해 적당히 사서 백화점을 나설 수 있었다. 젤리와 사탕을 먹는 동안만큼은 평화의 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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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중심부에 위치한 백화점 Kaufhof (2018.7. 독일 뮌스터) / 고르는 사탕 가게.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 (2018.7. 독일 뮌스터)



다음 목적지는 Münster Arkaden으로 정했다. 말 그대로 복합 쇼핑몰 같은 느낌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스타필드나 타임스퀘어와 비교하면 규모는 한참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지하 슈퍼마켓, 1층 식당, 2층의 스포츠용품 판매점이나 장난감 가게까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봐서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쇼핑몰 1층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젤라토)은 우리 부부의 버켓 리스트 중 하나였다. 가격은 한 스쿱에 1유로 정도. 양도 많고 퀄리티도 상당하다. 4년 전 시내에 올 때마다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역시 예상대로 아이들도 무척 좋아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2층 장난감 가게에도 들렀다. 장난감 가게 또한 전 세계 공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새롭고 신나는가 보다. 세현이 자전거용 헬멧과 온이 장난감을 샀다.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뮌스터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이 도시를 충분히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청과 주변 상점들을 천천히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눈치다.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위해(가능하다면 낮잠을 재울 겸) 발걸음을 재촉하여 숙소에 들어왔다. 어제의 상황을 교훈 삼아 오늘은 창문도 닫고 나왔다. 하지만 에어컨 없는 숙소의 비애. 방 안은 역시나 더웠다. 잠은 고사하고, 도저히 방 안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찬물 샤워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우리는 계획 없이 걷기 시작했다. 계획한다고 그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가야 할 곳이 있는 것은 아니다. 4년 전 우리 부부도 계획 없이 이 도시에 와서, 계획 없이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냈다. 때가 되면 다음 날 기차를 예약하고, 주말 비행기를 예약해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식의 반복이었다. 이곳은 우리 부부가 인생의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여유롭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곳이다. 뮌스터에 다시 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난 4년의 삶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래 감사해야지.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아이들의 짜증을 받아주는 일은 참 어려운 문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세현이가 짜증이 많이 났다. 누적된 피로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거 다 못 해주는 부모가 원망스러웠을까. 어떤 수를 써도 달래지지 않았다.

문득 세현이가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처음 아빠가 된 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마음이 어려웠다. 달래고, 안아줘도 그치지 않는 울음. 늦은 밤 아이를 달래고 재우겠다고 싱크대 앞에서 물을 틀어놓고 안아주었던 기억, 아기띠를 매고 캄캄한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녔던 기억.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치지 않는 아들의 울음 앞에 내 감정도 무너진다. 아이에게 소리도 질러보고, 마음속으로 울어도 보지만 해결될 리 만무하다. 다른 부모도 이럴 거라 스스로 착각하며 위안으로 삼으면서도, 가슴 한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내 아내만 봐도 모든 부모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결국은 이 또한 내 문제일지 모르겠다.

짜증 부리는 아들을 데리고 길을 걷는 일이 더 힘든 이유는 바로 주변 눈치 때문이다. 길에서 혹시 독일 현지인이 아동학대로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아니, 이 먼 곳에 아이들을 데려온 것 자체가 학대라고 비난한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살고 싶진 않다. 특히 세상 기준,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도 않다. 내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살고 싶지도 않다. 특히 나와 내 아이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내면 갈등은 이런 상황에서 날 혼란스럽게 만든다. 울고 짜증을 부리는 아이. 주변 시선을 신경 쓰고 있는 나. 결국, 타인 시선을 의식해서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조정하려는 나의 의도가 말과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너무 어렵다 이런 상황은. 나도 아이도, 아마 더 연습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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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의 어느 놀이터에서 (2018.7. 독일 뮌스터)



힘겹게 뮌스터 시내 초입에 있는 놀이터에 도착했다. 그 가까운 거리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가. 놀이터에 도착해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비눗방울 놀이와 모래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고 다루는 일은 아내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아니,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못난 아빠 말고, 엄마 덕분에 녀석들이 다시 웃기 시작한다. 금세 컨디션이 회복되고 있다. 대략 한 시간 가까이 놀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가까워 왔다. 더 놀겠다는 두 아이를 달래 발걸음을 다시 호텔로 옮겼다. 내일은 아침부터 출발해 Bremen을 거쳐 파리로 가는 여정. 더 무리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뮌스터에서 3박을 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틀 지낸 것이기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

호텔로 들어와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아이들 재울 준비를 했다.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피곤했는지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방을 정리하는 동안, 마지막 핫도그 만찬을 위해 다시 숙소를 나섰다.

핫도그를 사기 위해 다녀오는 길. 그러고 보니 뮌스터 거리를 혼자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4년 전에도 늘 아내와 함께였기에 혼자 걸은 기억은 없다. 홀로 걷는 뮌스터 거리. 아내, 아이들과 함께 다닐 때는 몰랐는데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다. 혹 길을 잘못 들까, 아니면 말이 안 통하는 누군가와 시비라도 붙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발걸음도 빨라진다. 그래도 뮌스터 거리를 걸을 기회가 아직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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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시내 초입에 위치한 스타벅스와 거리 (2018.7. 독일 뮌스터)



이제 자고 일어나면,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영 아쉽기만 하다. 4년 전 아내와 지냈던 기숙사를 못 가본 것도 아쉽고, 가고 싶었던 빵집에 가지 못한 것도 너무 아쉬웠다. 여행 중 한정된 시간에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쉬움은 달래지지 않는다. 오고 가는 길. 중앙역에서 한 컷, 가고 싶었지만 못 간 추억의 스타벅스 앞에서 한 컷. 천천히,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사진을 남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오니 아내는 짐 정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내와 핫도그를 먹으며, 4년 전 우리와 현재 우리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과연 우리 인생에 또다시 뮌스터에서 살 기회가 찾아올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우연이고 기적이듯, 어떤 도시나 장소를 만나는 것 또한 충분히 기적이라 할만하다.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이 도시를 만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두 아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 작은 독일의 소도시에 오게 된 것일까. 관계와 만남이란 언제나 오묘하다.

아쉬운 감정을 숨길 필요는 없다. 그냥 이 감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있겠지. 2014년 이곳을 떠날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지 않은가. 다시 이 도시를 만날 그날, 우리와 아이들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뮌스터가 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우리 여행은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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